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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Jul 05. 2023

신비의 바닷길


전라남도 서남부, 진도를 찾았다.

도착한 날은 비가 거세고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바닷바람은 거칠다. 인정사정없이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우산은 이미 존재 의미를 잃었다.

차차 비가 멎고 바람도 가라앉았지만 해무가 자욱한 바다는 본연의 색을 드러낼 기미가 없다.


파란 바다..

그 바다를 보고 싶어 이 멀리까지 달려왔는데 내 마음 따위 아랑곳없다는 듯 무심하게 출렁인다.



이른 아침 바닷길 산책에 나섰다.

'신비한 바닷길'이라는 패목을 따라 해안가로 내려간다.



바닷길이 열리고 양쪽으로 바닷물이 찰랑인다.

분명 어제는 이곳이 바다였는데 길이 하나 생겼다.

그 길을 걷는 기분이 묘하다.

물속에 잠겨있었을 조개와 게와 바다 풀들을 보고 만지며 천천히 걷다 보니 있을 법 하지 않은 곳에 작은 언덕이 하나 보이고, 또 하나의 길이 보인다.

세로로 길쭉하게 덧대어 만든 나무 문이 숲을 향해 활짝 열려있다.



문 안쪽은 길쭉하게 뻗은 대나무가 촘촘히 서있고 그  사이로 마음을 유혹하듯 오솔길이 펼쳐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건 아닐까?'

바닷길 건너 만난 또 다른 작은 섬이라니.



심비의 문 앞을 기웃대며 작은 언덕을 향해 오르니

숲은 바다향을 듬뿍 머금고 깊은숨을 내쉬며 나를 삼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나무와 새와 꽃이 반기는 숲길을 따라 시간을 잃은 사람처럼 헤맨다.

맑고 깊은 새소리를 들으며 저 소리의 주인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며 고개를 들어 찾아보지만 소리만 귀에 닿을 뿐 새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름 모를 풀과 꽃을 눈에 담고 느린 걸음으로 숲의 기운을 마시며 낯선 장소에서의 정취를 맘껏 즐겨본다.

한 손에 움켜진 무섬과 온몸을 감싼 호기심이 즐거운 기의를 만들어낸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저 멀리 어렴풋 들리는 작은 외침. '바닷길이 닫힌다!'

멈춘 시간을 거슬러 두근대는 발길로 다시 바다로 향한다.

바닷길이 닫히기 전에 이 오솔길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만약 이 안에 갇혀도 재밌겠다는 짓궂은 생각이 불쑥 올라오는 건 또 무슨 심보일까?



닫히는 바닷길이 아쉬운지 그 길에 서성이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時空을 벗어난  아침 산책.


신비한 바닷길,

작은 숲에 살포시 내려놓고 온 마음이 또 다른 앨리스에게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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