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 보면 귀에 닿는 단어들이 거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친 표현이나 필요 없는 말줄임, 쓸데없는 부사의 반복등이 그런 경우다. 생각 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지속되면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특히나 이야기 전체가 부정적인 시선을 향하고 있다면 그 자리는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 싶다. 그에 비해 다듬어진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만나는 자리는 편안하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배려하며, 존중받는다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에게선 품위가 느껴지고 그 삶 또한 품격이 있다. 자기만의 삶의 기준이 있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이들이다. 본인의 즐거움을 찾아 하루를 바쁘게 움직이고 삶의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기에 이런 이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내 삶의 긍정성을 한층 더 올려준다.
주변의 지인들을 떠올려본다. 만날 때마다 늘 삶의 불만과 타인에 대한 원망, 본인 삶의 억울함을 호소하느라 수심 가득한 낯으로 모인 자리를 어둡게 물들이는 이도 있고, 반면에 삶의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요즘 사는 이야기를 미소로 풀어내는 이도 있다. 내 삶의 온도는 후자 쪽에 맞춘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터널 같이 어두운 과정이 있고, 견디기 힘든 무게를 감당하며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늘 어두운 면만을 부각하며 살아가고, 또 어떤 이들은 승화시켜 긍정의 힘으로 끌어올린다. 홍해 갈리듯 나뉘는 이런 삶의 이면을 살펴보면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 또한 다르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데, 내 언어의 주인이 되지 못한 말들은 의미가 모호하고, 생각과 감정의 엇박자로 부유하는 단어들은 공허하게 울린다. 사유가 깃들지 않은 말들의 잔치에 소모된 시간은 다음 기약에 야박해질 수밖에 없다.
오랜 만남이 아니어도 대화 중에 쓰는 언어를 살펴보면 겉으로 드러내진 않아도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그 삶이 어렵지 않게 유추된다. 기품이 느껴지는 대화, 은근한 고상함이 드러나는 말에선 향기가 난다. 이런 언어의 소유자는 오롯한 자신만의 기준으로 삶을 대한다. 자신의 기준으로 단단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시선과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잣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기 내면을 향한 끊임없는 관찰과 냉철한 시선이 필요하기에 이들의 언어가 거저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하루의 언어를 점검한다.
의미 없이 한 말, 쓸데없는 말, 부정적인 말, 남을 헐뜯는 말은 없었는지,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 준 말, 칭찬의 말, 긍정의 말, 공감의 말로 다정한 하루를 보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