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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Sep 29. 2024

자기를 잃는 일

내 안에서 '나'를 잃고 헤매는 일과 이별하기

잘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것인가?

누구에게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면 하루를 잘 보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혹은 그 이상의 일을 개미처럼 열심히 채워나가는 것이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일까?

시간을 쪼개 분 단위로 할 일을 정하고, 쉼 없이 달리는 사람. 그렇게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불안이 올라오고 뒤쳐지는 느낌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주변에서 성실하다고 인정받는 Y의 이야기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영어 단어를 외우고, 전화영어로 회화 감각을 익힌 지 수십 년째, 영어만으로는 부족해 일어와 중국어, 최근엔 스페인어도 도전하고 있다는 Y의 이야기를 들으며 왜 저렇게 달리기만 할까? 무엇이 그를 숨 가쁘게 몰아세우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뭔가에 도전하고 열심히 산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안에서 '나'를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중독에 빠진 그는 버거운 무게를 짊어지고 일상에 짓눌린 채 살고 있었다. 불행의 마음을 품고 몸과 마음에 병을 키우며 사는 그에게 차 한 잔을 건네며 인생에서 행복했던 한 때가 언제였는지를 넌지시 물었다. 따뜻한 차의 온기를 손안에 품은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한동안 말이 없어진다. 생각을 고르는 그의 표정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듯 혼곤해지더니 이내 아이처럼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어릴 적 시골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놀던 한때의 이미지를 끄집어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늘이 맑았고, 햇살이 눈부셨다는 이야기, 그때의 감정, 잊고 살았던 자신의 즐거운 기억들을 개구진 아이마냥 늘어놓기 시작했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은 한순간 그에게 미소를 선물했고,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난 분명 '행복'을 읽었다. 좀 전의 불안과 다급함은 오래전 잊힌 연인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출장길 어느 호텔방, 잠에서 깨어난 얀은 순간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낯선 감정에 사로잡힌 그에게 의사는 너무 바삐 살아오느라 영혼을 잃어버렸으니 편안한 곳에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릴 것을 처방한다. 영혼이 쫓아오지 못할 속도로 바쁘게 몰아치듯 살아온 얀. 자신 안에서 사라져 버린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조용한 시골집에 앉아 잃어버린 영혼을 기다리며 얀은 사색과 상념에 빠진다. 올가 토카르축과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의 이야기다.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구, 달리고 또 달려야만 겨우 유지되는 현실이 버거운 Y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그림책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경주마가 되어 속도를 올리다 보면 가슴에 담아야 할 진정 소중한 모든 것들은 담을 새도 없이 느껴지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어딘가 있을 행복을 위해 달려보지만 그 끝에서 과연 무엇을 마주할 것인가. 


자주 멈추는 일.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모든 것들과 눈맞춤 하는 일. 

속도를 늦추고 펼쳐진 자연을 마주하는 일.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 

그 안에 모든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능력이 갖춰진다면 

더는 '자기'를 잃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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