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기원전 2737년 이라니..
차나무에 달린 연둣빛 찻잎의 은밀한 유혹에 빠진 영국을 들여다보면서 그 유혹의 발상지인 중국이 궁금해졌다. 중국에 은을 갖다 바치며 찻잎을 겨우 얻어냈던 영국 사람들의 눈에 비친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세계의 중심이라 여기며 콧대 높던 중국에선 대체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한 걸까? 그리고 그 찬란했던 문화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 것이 차의 영향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차의 기원을 찾다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인물은 신농이다.
세계에서 차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중국인이며, 그 시작은 기원전 27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역사에 관심이 있던 시절이 있었을까? 역사와 관련된 과목을 그리 좋아한 적이 없다. 그런 내가 홍차와 사랑에 빠진 이후 차의 기원을 찾아보며 그와 관련된 차 문화와 역사에 빠지기 시작했다. 차를 제일 먼저 마신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 어느 나라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지, 이런 작은 호기심은 차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렇게 해서 처음 나와 차로 인연을 맺은 이는 머리 양쪽에 작은 뿔이 달린 전설 속 인물 신농이다. 신농을 묘사한 그림은 여러 버전이 있지만 대부분 머리 양쪽에 작은 뿔이 달려있고, 손에는 약초 같은걸 들고서 질겅질겅 씹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데, 머리의 뿔은 소를 연상시키듯 그가 농업의 신이라는 것을 짐작케 하고, 손에 든 약초는 그가 의학의 신임을 의미한다. 그는 나무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고, 사람들을 이롭게 할 요량으로 약초를 찾기 위해 자연에서 나는 모든 풀을 뜯어 맛을 보았단다. 이런저런 풀을 뜯어먹고는 어느 날 일흔두 가지 독에 중독이 된 그에게 우연히 나타난 차나무의 찻 잎. 온몸에 독이 퍼져 꼼짝할 수 없었던 신농이 찻잎을 씹어 먹으며 서서히 해독이 되었다는 전설 속 이야기를 통해 그 과장됨 속에서도 믿음이 생기는 건 내가 차를 마시며 하루하루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지는 걸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차는 약의 개념으로 처음 시작이 되어 세월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중국인들의 삶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중국인들에게 차는 어떤 의미로 일상에 자리하고 있을까?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읽다가 차를 마시는 반가운 장면을 만났다.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차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온 시선이 집중되는 증상은 차와 사랑에 빠진 이들의 첫 번째 증상일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행복을 얹어주는 고마운 순간이다.
주인공 허삼관은 첫째 아들 일락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란 걸 알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는 일락이가 친 사고로 병원비를 크게 물어낼 일이 생기자 흥분이 된 나머지, 없는 살림이니 아내더러 일락이의 친부에게 찾아가 치료비를 받아오라 한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자신의 아들인 줄 알고 키웠던 허삼관의 심정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아내는 남편이 시킨 대로 돈을 받으러 가지만 받아오지 못했고, 치료비를 물어내지 못하니 일곱 명이나 되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허삼관의 세간 살림을 가져가려고 집으로 쳐들어 온다. 그 다급한 순간 허삼관은 아내를 향해 느긋이 이렇게 말한다. "어이, 찻잔 일곱 개 하고 물 한 주전자 끓이라고. 통 속에 찻잎이 남아 있나?"
툭 내뱉듯 던지는 허삼관의 말속에서 만만디 같은 그들의 일상이 엿보이고, 차의 존재가 드러난다. 내주는 차를 차마 마시지 못하고 그냥 떠나려는 일행을 붙잡아 앉혀서는 차를 따라 나눠준다. 자신들의 세간 살림을 짐수레에 거둬가는 야속함은 한쪽에 밀어 두고 차를 마시고 가라니.. 함께 차를 나눠 마시고는 그들이 짐수레를 끌고 서둘러 떠나자 그제야 부부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우는데, 이 과장스러운 설정을 통해 무거울 수 있는 장면을 다소 가볍고 천진스럽게 표현한 이 소설의 블랙 코미디적 요소 안에 '차'가 등장한다.
차는 중국인들에게 있어 물처럼 공기처럼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부분으로 느껴진다.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당신네들에게 차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이 차를 특별히 마신다는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차는 그들의 일상에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 차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중국, 차는 중국인의 뿌리며 일상이다.
"早茶一 , 一天威風, 午茶一, 勞動輕松, 晩茶一 , 提神去痛 "
"아침 차 한 잔에 온종일 힘이 넘치고, 점심 차 한 잔에 일이 가뿐하며, 저녁 차 한 잔에 기운이 나서 고통이 사라진다." 그들의 속담을 따라 읽다 보면,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그 깊은 뿌리에 난 작은 질투심마저 느낀다.
차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작 점에서 만난 첫 번째 인연, 신농. 그의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차가 품고 있는 본성이다. 그를 통해, 차를 통해 사람을 향한 마음의 길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