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군고구마

먹거리의 즐거움

by winter flush

어릴 적엔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감자를 한가득 쪄 놓아도, 김이 모락 올라오는 군고구마를 식탁에 올려놓아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마도 맛이 없다는 게 이유였을 겁니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맛있으려나 하고 슬쩍 입으로 가져가 보지만 역시나 하나를 다 끝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제가 언제부턴가 이 녀석들의 참 맛을 알게 되었지요. 포슬포슬 전분이 가득한 찐 감자를 호호 불어가며 먹을 때 채워지는 기쁨, 달짝지근한 군고구마의 속을 야무지게 파먹을 때 올라오는 달콤한 고마움.. 이 녀석들을 홀대하던 옛 시절이 반성 되는 건 이 구황작물들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던 그때의 마음을 야단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책이 벽돌 책으로 유명한 '총, 균, 쇠'입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나지 않아 책장에 꽂아 놓은 채 노려보기만을 몇 해.. 새해가 되면서 마음 단단히 먹고 집어 들었습니다. 하루에 조금씩 야금야금 먹어치우다 보니 200페이지 정도 진도가 나갔네요. 참고문헌 빼고 700페이지 가까이 되니 아직 1/3도 읽지 못한 셈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서 슬슬 마실 나가듯 하루에 조금씩 읽어나가는 게 즐거운 일이 되었습니다. 마침 읽고 있는 부분이 식물재배에 관한 내용이네요. 총 20만 종의 야생식물 중에서 겨우 수천 종 만이 인간이 먹을 수 있고, 현재 작물화된 것은 수 백 종뿐이랍니다. 그중 연평균 총생산량의 80%를 책임지는 것은 12종에 불과하고, 그중 감자, 고구마가 속해 있습니다. 이 녀석들이 고맙게도 수천 년 전부터 작물화되었다는 것은 당시 먹거리가 불완전하고 다양치 못한 시대에 얼마나 고마운 일을 담당했을지를 가늠하고도 남는 일이죠.(이 글을 쓰면서도 전 군고구마 하나를 야무지게 먹고 있습니다.^^) 먹기 힘든 상태의 작물들을 오랜 시간 들인 노력으로 지금 우린 꽤 손쉽게 먹고 있습니다. 아몬드나 도토리 같은 써서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이 수천 년 전 사람들의 노력으로 결국은 이리 순하게 만들어졌으니까요. 요즘 흔히 보이는 딸기도 야생 상태로라면 작아서 먹을만하지 못했을 테니 요즘의 딸기가 제게 주는 즐거움을 떠올리면 고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위에 고마운 일 투성입니다. 고마움을 찾는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휘-둘러보기만 해도 사방에 널려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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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토마토의 탱탱하고 싱그러운 자태를 보시겠어요? 어쩜 이렇게 동글동글 예쁠까요~

씻다가 참지 못하고 한입 베어 물고 말았습니다. 입안에서 톡 하고 터지며 번지는 달콤함은 마음마저 싱그럽게 해줍니다.

반은 싱싱한 상태로, 반은 건조를 시키기로 합니다. 건조하는 김에 천혜향과 레몬도 꺼냈습니다.

건조시킨 레몬을 물에 띄워 마시거나 생강차 우릴 때 함께 띄우면 가라앉은 기분도 금세 업 시켜 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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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토마토는 샐러드 만들 때 몇 개 얹어 먹거나 바게트 슥슥 잘라 살짝 토스트 해서 올리브오일 뿌리고 살짝 올려 먹어도 좋고(통후추 갈아서 뿌리면 굿) 파스타 요리에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지요.

천혜향은 너무 맛있어서 과자처럼 집어먹다 보니 이틀 만에 사라졌습니다.(땔내미가 반 먹고 제가 반^^)

말린 과일이 당도가 높다는 사실에 제 몸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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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차 우리고 책 읽으며 군고구마 먹으며 글 쓰다 보니 아침이 되었네요!

행복한 주말이 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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