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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 Oct 18. 2024

자폐 아이의 애착

아침에 눈을 뜬 아이들이 나에게 저마다 인사를 건넨다. “엄마, 무서운 꿈 꿨어요.”, “엄마, 오늘 어린이집 안 가고 엄마랑 있을래요.” 대부분 당장의 애정 표현이 필요하다는 말들이다. 그러나 DH는 오늘도 본인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 장수풍뎅이 수컷은 뿔이 있고, 암컷은 뿔이 없죠?”, “엄마, 지구의 위성은 하나죠?” 등이다. 가끔 “엄마 잘 잤어요?”를 말해주기는 하나 대부분은 본인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먼저 튀어나온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보고 할 말이 장수풍뎅이와 우주 이야기라니! 이제는 그러려니 하지만 매번 당황스럽긴 하다. “DH야, 엄마 사랑해요. 잘 잤어요?라고 먼저 이야기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 그제야 아이는 “엄마 잘 잤어요?”를 붙인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많은 아이들이 집착하는 것들이 있다. 특정 물건이나 캐릭터, 동·식물 등이 해당된다. DH의 경우도 그러하다. DH는 우주와 행성을 좋아한다. 특히 해왕성. 그리고 장수풍뎅이, 티라노사우르스, 백상어, 지하철과 기차, 버스, 민들레 등을 좋아한다. 주위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다른 아이들도 보면 지하철, 기차, 버스, 공룡 등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특이하게 엘리베이터를 좋아하는 아이도 보았다. 이렇게 아이들이 꽂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언뜻 보면 많은 부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만 조금은 공통점들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느 순간 좋아하던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것들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난 DH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해왕성은 왜 좋아할까? 등이다. 파란색의 집착이 있는 DH는 아마 해왕성의 영롱한 파란색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게다가 원의 형상을 한 해왕성이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졌을 것 같다. 하루에 한 번 이상은 DH가 도화지에 해왕성을 그리는데 다른 행성보다 유독 완벽한 동그라미를 유지하며 그린다. 어느 곳도 삐뚤지 않은 원이다. 삐뚤어지면 지우고 다시 그리거나 다른 도화지에 새로 그린다. 그런 이유에서 민들레 홀씨를 좋아하는 것도 같다. 원은 굉장히 매력적인 도형이긴 하다. 완벽한 규칙이 있다. 지하철도 비슷한 이유로 좋아하는 것일 거다. 정확한 노선이 있고 변하지 않는 규칙들이 있다. 이러한 규칙들이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것 아닐까.

 외 티라노사우르스와 백상어는 불안에 대한 표출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유독 상위 포식자를 좋아하는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동물이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얼마 전 범고래 무리와 싸우다가 후퇴하는 백상어의 영상을 보여주었다가 DH가 한참을 울어 곤혹스러운 적이 있었다. 지금도 범고래와 백상어가 싸우면 백상어가 이긴다고 종종 우겨댄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말이다. 아마 가장 강한 상대를 좋아하면서 세상의 불안 요소를 잠재우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보니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만나는 세상이 얼마나 불안하면 본인의 애착물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하는가 말이다.


그날도 이런저런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것들을 좋아하지만 왜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적을까에 대한 생각을 한참 이어가던 참이었다. DH는 아직도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관심이 적다. DH의 애착 지점이 사람이 된다면 참 좋을 텐데. 사람을 좋아하면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참 변수가 많다. 어느 때는 친절하지만 어느 때는 무섭다. 표정과 속마음이 계산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역시 그런 것들이 힘들겠지 라는 생각에 미쳤다.


그때 DH가 나에게 달려와 폭 안겼다. “엄마, 말랑말랑해” 나의 팔을 조몰락거리는 아이. “DH야 너는 뭐가 제일 좋아?”라고 물으니 “엄마”라고 답한다. 아이는 나의 말랑거리는 살을 유독 좋아하고 나의 냄새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아이가 애착하는 것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맞다. 아이는 종종 나의 나이와 내가 좋아하는 색깔, 음식 들은 묻곤 한다. 물론 매번 같은 대답이어야 하긴 하다. 그러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가. 나를 통해 아이가 세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떠서 "엄마, 잘 잤어요"하는 날도 있다. 내가 아이를 위해 더욱 단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름다운 세상을 더욱 많이 마주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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