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윤동주에 의한 에튀드 no.1

거장(virtuoso)

by 최시헌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둘,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 하나인 윤동주 시인의 작품들에 대하여 연습곡(etude)이라는 테마로 가장 진솔하게 단상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에튀드가 주로 어떤 곡의 서곡(prelude)이 된다는 의미에서 나의 시 습작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에튀드 작품이 흔히들 그러하듯이 3부작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no.1은 <쉽게 씌여진 시>이다. 내가 윤동주의 시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쉽게 씌어진 시>인데, 유독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말이 고요하면서도 울림이 있었던 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육첩방 밖에 비가 내리는 이 심상을 통해 화자가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식민지인으로서 일본에서 유학하며 느끼는 고독함과 일종의 죄책감이 일렁이듯이 밀려왔다.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라는 말은 그 비애를 당신의 노래에 새겨넣어야 했던 아픔이 아니었을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라는 말은 자조적이다 못해 깊은 성찰이 느껴진다. 그에게 시가 어렵게 쓰여지는 것은 어떠한 의미였을까. 그가 썼던 시들은 살아가기 벅찬 인생에 의해 쓰지 않으면 안 될 일종의 예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스스로가 시를 쓰는 것마저도 지친다는 의미를 담은 시조차도, 그 한 치의 연약함도 용납할 수 없는 시대의 부름이 압도적으로 잔인하다.


그럼에도 윤동주는 예언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 시대처럼 다시 올 아침을 자신의 작은 등불로나마 맞이하려는 화자는 자기 자신이 자신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에. 그리하여 그는 최후의 나를 붙잡아주기 위해 시인으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악수를 한다.


나의 시들은 어떠한가. 윤동주처럼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을 부끄러하지 않는 것만 뺴면, 나도 시에 대해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시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의 시는 무엇을 노래하고 싶은 걸까. 10년을 넘게 중학생 때부터 시를 써오는 동안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다.


비록 나는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이방인인 것처럼 세상과의 거리를 좀처럼 좁힐 수 없어서 이런 고독감조차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이제 보니 윤동주 시인은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나는 그가 이겨나가야 했던 고뇌의 어느 부분만큼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이 연습곡의 제목은 거장(virtuos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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