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첫 숨

by 겨울빛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각 지역마다 다른 음식들과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보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몸은 이런 심적 즐거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돌아다니면서 이 곳 저 곳에서 자다 보면 지쳐서 곯아떨어지긴 하지만, 내 집 침대에서 만큼 회복이 안되는 것도 크다.


이런저런 시험을 해보니 여행지에 따라 다르지만 여행의 즐거움은 일주일 정도가 최고고, 2주 차부터는 몸이 회복되는 속도가 더뎌지고, 한 달쯤되면 이제 집에 가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된다. 누구는 세계 곳곳을 누벼도 마치 처음처럼 즐겁게 여행하던데, 이 타고난 저질체력이 조금 아쉽지만 이쯤되면 인정할 때도 된 것이다.


여행은 가는 것도 여행이지만, 돌아오는 여정도 여행이다.


가장 먼저, 착륙 20분 전 나오는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이제 20분 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합니다. 안전벨트를 매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어쩐지 살짝 긴장도 되고 어서 착륙해서 이 비행기에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땅에 쿵 닿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누군가 나를 뒤에서 휘감듯이 안아주는 듯한 안도감에 휩싸인다.


아, 드디어 땅에 닿았다.

아, 집에 가야겠다. 하는 순간.


하지만 내림과 동시에 피로감이 몰려오고, 어쩐지 지금 입고 있는 낡은 회색 후드가 물에 젖은 것처럼 느껴진다. 인천 주민이라면 정말 좋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집에 가는 데에만 또 두시간이 넘게 걸린다. 정말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것과 다름 없는 시간이다. 그래도 미리 예약해 놓은(버스를 예약을 안하면 이제 못탄다) 버스 시간에 맞춰서 수속을 맞춰서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만, 이 스미는 듯한 피로감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운이 좋으면 바로 버스를 타지만 못타면 30분에서 한시간을 터미널에서 기다린다. 분명 나보다 스무살은 더 많아보이는 어르신들이 하하호호 이야기하는 소리, 그 옆에는 나보다 열살은 어려보이는 학생이 헤드폰을 쓴 채로 캐리어에 기대 죽상을 하고 멍하니 핸드폰을 보고 있다.


버스의 시트냄새와 함께 탑승하면, 비행기에서 하도 잠을 많이 자서 잠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시시각각 승객들의 입과 몸에서 나온 그 눅진한 피로함이 내 피부를 파고드는 것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지친건 내 몸뚱이인데 어쩐지 그들의 노곤함도 함께 더해지는 이 공항버스는 어떨 때는 장시간 탄 비행기보다 더 힘들때도 있다. 뛰쳐나가고 싶은 강렬한 마음을 달래가며 하도 들어서 이제 외워버릴 것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멍하니 스쳐가는 창밖의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면 집 근처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때부터는 이제 조금씩 설레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그 첫숨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이마시는 첫 숨을 향해.


캐리어의 무게는 분명 공항에서와 똑같다. 하지만 집앞에서부터는 어쩐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엘레베이터가 카운트 다운으로 내려오면서부터 내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늘 느려터졌다고 불평불만하던 엘레베이터가 오늘따라 반짝여보인다. 그리고 복도식 아파트를 성큼성큼 집 문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갈 때마다 젖은 것 같았던 나의 후드가 점점 마르기 시작한다.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지는 허물처럼 나의 어깨에 짐이 내려지고, 신성한 의식이라도 하는 듯이 하나하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일부러 현관문을 크게 연다.


그리고 폐 가득 들이쉰다.

그 첫 숨을.


약간 고소한 냄새와, 겨우내 결로로 곰팡이가 지나갔던 자리에 남은 약간의 퀘퀘함과 새큼한 향기가 스쳐가는 아주 따스한 우리집 냄새.

마음에서 뭉클하게 몽글하게 방울들이 터진다. 방울들이 퐁, 퐁퐁, 퐁퐁퐁퐁 터져 안도감이 내 몸밖으로 터져나간다. 몸을 휘감는 이 행복감과 안도감.

그리고 행복감과 안도감이 초여름의 바람처럼 나를 한차례 휘감고 나가면, ‘이제 너는 안전해’라고 알려주는 듯이 잠이 쏟아진다. 이때 자는 잠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드는 잠, 마치 엄마가 덮어준 막 햇볕에 말린 따스한 이불처럼 포근하게 잠이 든다.


나는 이 몽글한 행복을 위해 여행을 한다.


이전 01화몽글몽글한 순간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