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서와 스트록

by 글쓰고돈쓰고

사람은 태어나서 나이 들면 모두 죽게 마련이다. 다만 어떻게 어떤 형식으로 죽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한때 '구구팔팔이삼사'란 말이 유행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정도 앓고 죽는 것이 복이란 의미다. 모두 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인간의 죽음은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다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선택된 죽음을 맞이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사망원인 통계' 자료를 보면 한국인의 3대 사망원인은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순이다. 암과 달리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은 순환기 계통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암(cancer)으로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심장마비나 뇌출혈(stroke)로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치는 것, 그리고 '구구팔팔이삼사'로 자연사하는 것, 이 세 가지 죽음의 형식은 사고사가 아닌 이상 우리가 언젠가는 저세상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죽음을 지켜봤다. 죽음은 생명이 다한다는 점에서 육신의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미지의 저세상으로 넘어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그동안 함께 했던 가족과 주변에 대한 이별의 슬픔 또한 정서적으로 괴로울 거라 생각한다. 그런 정신적 괴로움을 죽음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육신의 고통과 함께 견뎌야 하는 과정은 당사자나 가족들은 물론 주위의 지켜보는 사람들까지도 생에 대한 회의를 느낄 정도다.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죽음의 형식은 각각 이런 고통과 불안, 슬픔을 나름의 모양으로 겪게 만든다.


가을의 높고 푸른 하늘은 후텁지근하고 지루했던 지난여름의 기억을 떨쳐버릴 정도로 누구에게나 상쾌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꼭 그렇지마는 않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이 푸른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 것처럼 갑자기 닥쳐왔기 때문이다. 한 인생이 이렇게 끝날 수도 있구나, 허무감이 몰려오면서 절대자의 입김을 느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한 일주일 편찮으시다 돌아가신 것이다. '구구팔팔'은 아니더라도 '이삼사'에 해당되는 죽음으로 모든 이들이 바라는 형식이지만 가족들의 슬픔은 어느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죽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만은 고인에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예감한 게 있었는지 아버지는 죽음을 입에 올리며 담대히 맞이하셨다. 두려움도 없이 병원 가자는 말도 없이 호흡곤란을 감내하며 죽음을 묵묵히 기다렸다. 그리고 주무시듯 조용히 돌아가셨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깜빡 잠이 든 나는 새벽녘 너무도 조용한 정적에 오히려 잠이 깼을 정도였다. 새벽이 몰아낸 깊은 어둠 속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사라지셨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추운 어느 겨울날 엄마도 돌아가셨다. 이미 자리에 누우신지 1년째가 되던 때였기에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한 가닥 희망에 모든 것을 내려놓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었다. 바로 전날 밤에도 같이 만두도 쪄먹고 TV 보며 얘기도 나눴었는데... 다음 날 말은커녕 눈도 안 뜨고 숨만 거칠게 몰아쉬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냥 잠자듯 하루아침에 돌아가셨으면 슬픔은 컸어도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가 절대적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아직 살아있음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 걱정과 불안이 엄습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자꾸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라는 부질없는 한숨으로 절망을 밀쳐내느라 애썼다. 그렇게 마음고생은 시작되었다.


스토록은 환자와 가족 간의 소통이 갑자기 끊어짐을 의미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수십 년간 함께 해온 세월을 의미한다. 그 세월만큼 이별의 무게도 있을 터인데 한마디 말도 없는 텅 빈 이별은 너무나 가혹하다.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엄마를 보면서 많은 말을 하였건만 '전달'이 안되어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무척 괴로웠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두기만 한 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그제야 깨달았다. 하루 아니 한 시간 만이라도 깨어 있으면 그 많은 말들을 쏟아 낼 텐데... 차라리 서서히 스러져가는 암이면 '정리'하는 시간도 있고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내는 '절차'라도 거칠 수 있어 오히려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항상 눈 감고 자는 모습이었고 어쩌다 뜨는 눈동자에서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 나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도 마음속의 외침이 있었을 텐데 의식 없음의 장벽을 넘지 못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엄마에겐 외로운 투병이요 나에겐 답답한 간병이었다. 그렇게 1년 후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셨다.


그로부터 또 1년 후 둘째 매형이 암 선고를 받았다. 말기암이라 수술도 불가능했다. 아직 죽음을 생각하기엔 이른 나이기에 가족들의 충격과 주변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무너진다는 것이 아직 멀리 있는 죽음보다 더한 위기였다. 갑작스러운 스트록과는 달리 캔서는 서서히 막을 내린다. 그런 내리막에서 때론 오르막으로 희망고문을 할 때도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본인과 가족들은 그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보지만 결국 크게 보면 내리막의 일부였음에 실망한다. 서서히 스러져가는 생명에게도 시간이 주어지지만 죽음을 향한 시간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까. 오직 괴로움만의 시간이었을까. 자신의 죽음을 인정 안 했다면 그랬겠지만, 받아들였다면 그 남은 시간에서 의미를 찾았을 것이다. 내색을 안 했을 뿐이지 "내가 죽으면..." 으로 시작되는 대화를 몇 번 나눈 적이 있는 걸 보면 본인 스스로 어렴풋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나 싶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투병은 했겠지만 한편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이별의 절차를 밟았을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여행도, 쇼핑도, 산책도, 그때의 계절도, 내리는 눈이나 비도, 심지어 태풍이 몰아쳐도 매 순간 마지막이겠거니 의미를 부여하면서 죽음 저 너머로까지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그런 의미 있는 시간으로 탄탄히 다져 가족과의 이별에 무게를 더하고 싶은 것이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때론 삶에 대한 애착으로, 때론 가족에 대한 미련으로 현실을 거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걸 지켜보는 가족 또한 그러했으리라. 스트록처럼 갑작스러운 죽음보단 덜 허망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과정 역시 모두에게 또 다른 고통이다. 지난한 시간들이다. 그것은 처절한 투병이요 힘겨운 간병이다. 11월이지만 마지막 요양원에서의 가을 햇살은 유난히도 따사롭고 평온했다. 기나긴 풍랑 속에 모든 것을 받아들인 매형의 얼굴도 그랬다.


의식이 있고 없음을 대표하는 캔서와 스트록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서로 다르지만 그 어느 것도 고통을 가볍게 하는 것은 없다. 하나는 갑작스러운 허망함으로 슬픔을 깊게 하고, 다른 하나는 소통은 있으나 죽음의 과정을 세세하게 겪음으로 슬픔을 길게 한다. 모두 다 괴롭다. 그저 괴로울 뿐이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 받은 기쁨에 평생 이자를 붙여 슬픔으로 되갚아야 하는 삶의 굴레를 어찌 감당할까. 그저 견뎌낼 뿐이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간병인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할머니, 먼저 가 계세요. 언젠가 우리도 갑니다. 그때 다시 만나요." 영원한 이별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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