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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Feb 25. 2019

백열등과 형광등

백열등, 이제는 기술의 발전에 밀려 생활에서 멀어져 갔지만 한때 형광등과 함께 우리의 밤을 밝혀준 고마운 등불이었다.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고 경제적으로 형광등에 밀렸지만 백열등은 그 은은한 주홍빛 분위기에 정서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었다. 며칠 전 따뜻한 김밥을 위해 켜져 있던 스티로폼 박스 안의 꼬마전구를 보았을 때 반가웠다. '너 아직도 살아있구나'. 이젠 '빛'이 아니라 '열'을 내가며 삶을 지탱해가는 꼬마가 늠름해 보였다.

혼자 살면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게 되었다. 살림이 단출하니 그 가벼움에 이사 부담도 적었기 때문일까. 사는 집이 싫증이 나기도 하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도 한몫했을 게다. 그런데 이사 오면 번거로우나 반드시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전구 갈아 끼우기, 이제는 형광등이나 백열등이 LED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전등 빛은 예전의 형광등 색 아니면 백열등 색이다. 정확히 형광등 색은 주광색이라 하고 백열등 색은 전구색이라 한다.


이사 온 집마다 모두 주광색 등이었다. 밤에 주변 아파트에 불 켜진 것을 보아도 거의 다 하얀 주광색이다. 밝은 것은 효율적이지만 햇빛처럼 하얀색이 대낮의 연장인 것 같아 불편하다. 밖의 어두움엔 아랑곳하지 않는 밝은 빛이 신체 리듬에 거슬린다. 내가 예민한 걸까. 하지만 주거에서 인테리어 조명은 대부분 전구색으로 연출한다. 집은 일터가 아니다. 주광색이 주류인 사무실 조명이 집안에까지 효율적이란 명목으로 비친다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쉬려는 몸의 욕구에 배치된다.

우리는 하루의 주기로 살아간다. 해가 떠오르면서 아침을 깨운다. 빛이 밝아지며 일상을 재촉한다. 태양고도에 따른 빛의 밝기는 그때그때의 시각을 의미한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겐 해 시계의 감각이 있다. 현대인은 시계의 발명으로 시간을 숫자로 인식하지만 그 이전에는 빛의 변화로 분별하였다. 한낮 태양의 가장 밝은 빛을 기준으로 하루의 오르내림을 경험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이런 감각이 내재해 있기에 주간의 사무실 조명은 정오의 태양빛인 주광색이고 야간의 가정집 조명은 석양의 노을빛인 전구색이어야 한다. 그리고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땐 모두 소등하여 완벽한 어둠으로 하루가 끝났음을 우리 몸에 고하는 것이다. 이는 해 떴을 때 일하고 저물 때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였던 유구한 생활습관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빛의 변화에 여전히 우리 삶이 맞추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집은 기본적으로 안식처(shelter)다. 밤에 어둠으로부터 보호받음을 느끼려면 집안의 아늑함이 연출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시나브로 '밤'이 깊어감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안에서의 아늑함이 돋보인다. 주광색인 형광등은 말 그대로 낮의 빛이지만 백열등은 옛날 촛불이나 호롱불의 맥을 잇는 것으로 밤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밤을 전제(前提)로 한다. 한 가닥 심지에 의지해 가냘픈 불꽃으로 어둠을 밀쳐내다 보니 그 어둠과 섞여서일까, 노을빛을 닮은 불그스레함으로 공간을 더 따스하게 했던 불빛은 이젠 작은 유리알 속에서 나온다.

실내등은 어둠을 밝히는 양적 기능도 있지만 정서를 밝히는 질적 기능도 있다. 그런 기능을 인정하듯 요즘에는 방 하나에 등 하나란 공식이 깨지고 있다. 그 이상의 전등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실내의 부분 부분을 비춘다. 식탁이나 책상, 침대, 아트월(art-wall) 등을 비추는 조명이 분위기 있는 실내를 연출한다. 옛날엔 형광등 하나에 여관방 두 개가 의지하는 어슬한 시절도 있었다. 가운데 벽의 천장 부분을 뚫고 형광등 하나를 양분하여 걸쳐놓는 것이다. 한 쪽이 먼저 자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영화 속 장면이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어둠을 밝히는 것만도 고마웠기에 그 혜택을 함께하는데 불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푸르스름한 불빛에 여관방은 더욱 누추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왠지 기다란 형광등은 길었던 가난을 떠올리게 한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방안의 불을 켠다. 노을빛의 은은함이 퍼진다. 어둠은 잠시 물러난다. 아늑한 공간이 마련된다.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든 은은한 불빛은 하루의 끝물에서 나를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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