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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Feb 25. 2019

1987

영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대학생으로 돌아갔고 젊음의 혈기를 느꼈다. 엔딩 크레딧의 '그날이 오면'은 오히려 지나간 '그날'을 떠올리게 하여 자막이 다 할 때까지 일어날 수 없었다. 결국 눈물이 흘렀고 그것은 나도 그 시절의 아픔을 함께 하였다는 고백이 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잊힐까. 인생의 절정인 젊음과 맞물렸기에, 아니 그 젊음에 새겨졌기에 그 위로 세월의 더께만 쌓였을 뿐이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흐르는 긴장감과 그 시대의 배경이 나로 하여금 30여 년 전의 긴박감을 되살리게 하였다. 최루탄 가스의 매캐함은 지금의 미세먼지를 뺨칠 정도로 성가셨고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전경들과 그들을 실어 나르는 '닭장차'는 내 청춘의 배경을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라는 3저 호황을 통해 처음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하게 된 밖으로의 확장이, 안으로는 오히려 저들의 총칼이 되어 국민들을 탄압했다. 온 나라가 어수선한 그때 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학원이 진원이 되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형국이었다. 오죽했으면 중간고사 때 학생이 시험 본다 하여도 대학원생이 시험감독을 거부한다 했을까. 매일 밤 뉴스에서는 시험을 거부하기로 한 대학교 명단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었다.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있던 나는 비로소 우리 학교 이름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던 기억이 난다. 결국 영화에서 보았듯이 '4.13 호헌조치'를 직접 발표할 때 전두환의 굳은 표정이 TV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 되었고 그때부터 이미 민주화의 물꼬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그 시절에 청춘을 보낸 50대들은 모두 다 '내 영화'라며 기대하고 있었다 한다. 강동원, 하정우 같은 호화 캐스팅에 매료된 20, 30대와는 달리 그 이전의 세대는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온 산증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386세대'가 '586'이 되기까지 세월은 현실을 정과 끌로 삼아 다시 체제에 순응하는 중년으로 다듬었지만, 불의에 항거했던 순수 열정은 아직도 가슴 밑바닥에 조금씩이나마 끈적이고 있었음을 영화는 일깨워 주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온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내가 공권력을 직접 스치듯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가 대학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학생, 잠깐만..." 하더니 사복경찰 두 명이 양쪽에서 나를 낚아채듯 허리띠를 움켜쥐었다. 꼼짝달싹 못하게 된 나는 발바닥이 땅에 닿을까 말까한 채 그들이 이끄는 대로 가야만 했다. 골목 어귀 후미진 곳으로 끌고 가더니 다짜고짜 내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지는 것이었다. 그들의 손길은 신속하고 민첩했으며 날카로운 기계였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칼 같은 손에 찔릴 것 같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들이 왜 그러는지 아니까. 박종철 사진과 함께 사건을 규탄하는 문구가 적힌 유인물을 학교 근처로 복사하러 가던 중이었다. 그 당시 복사기는 복사집에만 있을 정도로 귀했다. 하지만 그런 '불온물'을 복사해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설사 복사기에 넣는다 하더라도 기기가 토해낼 정도로 삼엄한 시절이었다. 그날 교회 청년 집회 때 필요한 것이라 이 집 저 집 몇 군데 더 돌아다녔지만 거절당했다. 그 와중에 수상히 여긴 형사의 눈에 띄어 붙잡힌 것이다. 그 원본은 접어서 내 청바지 오른쪽인가 뒷주머니에 넣었는데 이제 탄로 나기 직전이었다.


"뭐야, 없네... 학생, 미안해"


하면서 그들은 미련 없이 가버렸다. 홀로 남은 나는 '뭐야... 없다고?' 중얼거리며 뒷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그런데 있었다. 어인 일일까. 그 '불온물'은 그대로 접힌 채 언제 복사할 거냐고 투덜대는 것 같았다. '저 인간들 형사 맞아? 신속, 민첩은 개뿔...' 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며 떨린 가슴을 쓸어냈다. 머릿속에서 애국가가 떠올랐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날 저녁 교회에 가서 낮에 있었던 일을 과장스럽게 떠벌렸고 '간증'을 마쳤을 때 나는 이미 투사가 되어있었다. 겨울철이라 겉옷까지 주머니가 많았고 때가 때이니 만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형사들이 문제의 그 호주머니를 깜빡했을 것이다, 나름 결론지었다.


'1987'은 시대극이기에 상영하는 내내 그 당시를 잘 재현하는지 검증의 눈으로 보았는데 오히려 나의 경험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었다. 당시 나는 운동권은 아니었지만 시대의 아픔을 같이 하는 젊은이였기에 마음으로나마 동참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헌조치가 계기가 되어 나도 거리로 나와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그때는 다 그랬다. '호헌철폐, 독재 타도'의 구호는 거리 곳곳에 울려 퍼졌고 같은 젊은이인 전경들과의 쫓고 쫓기는 사냥은 영화에서처럼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실제로 행해졌다. 친구와 함께 나온 나는 시위 도중 최루탄의 갑작스러운 집중포화에 각자도생의 길로 사방팔방 흩어졌다. 종로 뒷골목은 복잡하기도 하였다. 친구는 안 보이고 뒤에서 전경들은 쫓아오고 산재해 있는 '백골단'은 골목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진짜 영화에서처럼 쫓기는 나를 보고 숨겨준답시고 부르는 이가 있었으니 그 또한 젊은이였다. 나는 그를 향해 달렸고 결승점을 지나는 순간 그는 재빨리 철판으로 된 셔터문을 내렸다. 곧이어 얇다란 철판을 사이에 두고 붙잡힌 이들의 비명과 붙잡는 이들의 욕설이 뒤엉킨 채로 들려왔다. 안과 밖의 공간이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이었다. 간발의 차로 내가 피신한 곳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실이었는데 그는 이층 카페에서 일하는 웨이터였다. 숨이 차서 고맙다는 말을 눈빛으로나마 전하자 그는 올라가서 잠시 쉬고 있으라는 말로 대답했다. 쫓고, 쫓기고, 숨겨주고... 그때의 청춘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속마음만큼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 했으리라. 잠시 숨을 돌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감미로운 음악에 취해 젊은 남녀들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밖은 혹독했으나 안은 훈훈했다. 철판이 공간뿐 아니라 의식까지 갈라놓은 듯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청춘의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일주일 전 미팅했던 게 이들한테는 오늘이었을 뿐이니까.


"여기 잠깐 앉아도 돼요?"


구석진 빈자리에 앉아 웨이터가 가져온 물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 있는데 웬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앉아있던 나는 서있는 그녀를 밑에서부터 훑어볼 수밖에 없었다. 나이키 운동화에 늘씬한 다리, 청바지에 어울리는 새하얀 티셔츠, 무엇보다 맨 마지막 부위인 얼굴은 피날레를 장식했다. 당연히 나의 대답은 예스였고 그녀의 얼굴은 나와 같은 높이로 낮아졌다. 서로 마주 앉게 되니 자연스레 대화가 오고 갔다. 우리는 쫓기고 있었던 같은 처지의 대학생이었고 영화 속 김태리가 만난 '우연'의 변주였다. 셔터문으로 들어갔을 때는 따로였지만 나올 때는 같이였으니까. 잠시 후 다시 최루가스의 현장으로 나왔으나 우리는 카페 분위기에 전염되었는지 이미 투사로서의 투지는 간데없고 남녀 간의 설렘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전경들이 떼지어 휴식하고 있는 앞을 지나가야 할 때 데이트 중인 연인처럼 보이려고 팔짱을 끼면서 증폭되었다. 전경의 부러워하는 눈초리를 받으며 우리는 더욱 자연스레 연기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배우들처럼 레드카펫을 밟았다. 지나온 카펫 뒤로 날은 어둑해지고 시위대들의 구호도 아득해졌다.


그해 초여름 6.29선언으로 전국적 시위는 일단락되었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어제의 적이었던 대학생들과 전경들이 얼싸안기도 하고 어느 찻집은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대학 와서 배운 것은 없었으나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웠다. 직선제로 얻어낸 소중한 한 표에 무게감을 느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신뢰를 느낀다"라며 김영삼, 김대중도 환영했다. 그러나 또 다른 소원이 있었던지 두 사람은 민중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화의 기회를 '단일화 불발'로 날려버렸다.


그 이후로 민주투사라 여겼던 인사들이 하나둘씩 권력을 향해 '정치꾼'의 전철을 밟는 것을 보고 실망하게 되었다. 학교 정문에서 구호를 외칠 때 앞장서 진두지휘했던 우리 학교 총학생회 회장은 3선 국회의원으로 당의 중역이 되었고, 여장까지 불사하며 신출귀몰하게 경찰수배망을 빠져나갔던 전대협회장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고문치사 당한 박종철을 비롯하여 최루탄에 맞아 죽은 이한열, 전경의 집단 구타로 희생당한 강경대, 시위대에 깔려 죽은 김귀정, 시위 도중 분신자살한 김세진, 이재호 이 밖에도 운동권이란 이유로 군대에 끌려가 의문사당하기도 하고 삼청교육대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는 어디서 보상을 받나. 누구는 그것을 경력 삼아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는데... 결국은 권력지향이었던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것이 있을 수가 없는 이유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앞에 '합리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더 정확하겠다. 사회가 지금 이대로 흘러가는 데에는 다수가 수긍하는 합의들이 밑바탕에 깔렸을 테니까. 이런 나에게 진보를 외치며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위선 같아 보인다. 개혁을 빌미로 하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옛날 추억 어린 감성에 젖다가도 끝나고 밖에 나오면 환한 대낮에 일상을 깨운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에게 모두 중요한 일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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