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불씨를 키웠다. 그것이 마침내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증오는 복수를 계획한다. 나는 그 복수의 방법으로서 진흙탕 보다는 가랑비에 옷 젖듯, 그들을 늪으로 이끄는 방법을 택했다.
그 정보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언젠가 한 번 했었던 가족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아버지는 대학 교수였고, 오빠는 회계법인에서 일한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늘 좋은 학교, 좋은 환경, 좋은 사람들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저는 운이 좋아요. 주변에 나쁜 사람이 없었어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자라서 이런 삶을 많은 사람들에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자랑이 아니라 감사의 표현이라고 덧붙였지만, 그 말 속에는 자신이 얼마나 깨끗한 세상에서 살아왔는지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나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니.
그게 가능할까.
아니면 그저 보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알아볼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
그녀에게 정글은 뉴스와 SNS 속에만 존재했다. 노동자의 파업, 갑질 사건, 사기뉴스. 그런 것들은 그녀가 분노할 수 있는 안전한 거리에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공유하고, 비난하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하지 않았다.
그가 나와 사귀면서 그녀에게도 줄을 대고 있다는 것. 그녀를 향한 그의 관심이 진심이 아니라 옵션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의 대기명단에 올라 있다는 것.
그녀는 몰랐다.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그들이 가까워지는 것을.
그녀가 안심하는 것을.
그가 그녀에게 빠지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조금씩 그녀에게 늪을 보여줄 것이다.
그가 얼마나 계산적인 사람인지.
그녀가 믿는 그의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지.
정의롭다고 믿었던 그녀 자신이 얼마나 선택적이고 이중적인지.
당연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경험.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흔들리는 그 순간.
어쩌면 그것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없어지는 것, 무너지는 것,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배우는 것. 모두의 ‘선(善)’을 위한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한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원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