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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답정킴 Aug 26. 2021

교수도 숙제내기 싫어요

오래 보아도 귀찮냐, 나도 그렇다.


나도 숙제 내기 싫어요


학생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는 일이 있다.

교수가 과제를 내는 것은 본인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라든가

어쨌든 교수의 편의를 위해서라든가

어쩔 수 없이 해야한다든가

뭐 여러가지 오해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숙제 내기 싫다.


앞서 말했듯이 숙제를 내면 채점을 해야한다.

채점을 하면 시스템에 입력을 해야하고

다시 체크를 해야한다.

글쓰기 같은 경우는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하나하나 피드백을 줘야한다.


만약 내가 과제를 안 냈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렇다면 왜 학생도 싫고 교수도 싫은 숙제를 내는 건가.

그건 진짜로 학생들을 위해서다.

정답이 정해져있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친다면 쉽다.

그냥 채점하고 정확하게 점수내서 등급만 매기면 된다.


하지만 과제와 서술형 문제들 같은 경우에는

내가 조금 더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노력의 여하를 보는 작업도 함께 한다.

더 신경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냥 복사 붙여넣기 하는 것은 본인의 손해라는 것을 모른다.

왜냐면 나도 학생 때 몰랐기 때문이다.


매번 울면서 숙제를 채점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필요하면 따로 피드백해주겠다고

언제든 메일을 보내라고 말한다.

왜 그런 짓을 하냐고?

어차피 학생들은 내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왜냐면 애초에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나도 대학을 돌아보면,

내가 더 양질의 교육을 뽑아먹을 수 있는 기회를 왜 이렇게 놓쳤나 후회한다.

지금의 나라면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건

아마, 지금은 배우고 있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이런 얘기를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구나 생각이 든다.


다 너네를 위해서야.


이런 말, 어릴 때부터 많이 듣지 않았던가.





딴짓해도 괜찮아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

학생들을 재미있게 해주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얻게 해주고 싶다.

아직 초짜여서 이렇게 활활 타오르지만

금방 수그러들기도 한다.


그냥 교수도 인간이다.

학생들을 굳이 재우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더 잘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것 뿐이다.


가끔 수업 시간에 핸드폰으로 게임하는 친구들이 있다.

처음에는 숨겨서 하다가 지적하지 않으면 대놓고 한다.

안 보이는 게 아니다.


너네, 다 보여.






그래도 웬만한 경우 지적하지 않는다.

내가 지적해봤자 그래도 수업은 안 들을 거기 때문이다.

애초에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듣기 힘들다.

그럴 때마다 좀 더 재밌게 수업하고 싶어진다.

학생들 스스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대학시절, 그냥 듣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수업이 있었다.

철학기초수업이었는데, 와, 내가 이걸 배우고 있다니, 라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런 행복감까진 주지 못하더라도

그래도 내 수업에 들어온 이상 관심을 끌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도전을 했다.



학생들에게 관심을 얻는 건 나의 몫이다.

내가 열심히 계속 발전해가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수업을 신청한 이상, 조금이라도 관심의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

학생들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아주 오늘 꼰대같은 말들의 향연이다.

그래도 다행히 몇 해의 수업 동안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수업 시간엔 철저히 꼰대스러움을 감췄기 때문일까!





마지막 꼰대의 말


꼰대로서의 마지막 말을 한다면

열심히 하는 학생은 어떻게든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잘 하는 학생도 좋지만, 열심히 하는 학생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질문하고 질문해도 괜찮다.

모르는 걸 물어보고 더 잘하려는 학생들 덕분에 나는 더 긴장하고 수업한다.


오늘은 꼰대에 머물렀지만,

오늘도 열심히 꼰대가 되지 않기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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