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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답정킴 Aug 25. 2021

교수님? 저는 교수가 아닌데요.

시간강사 나부랭이라구요.


강의계획서부터 시작합니다.


시간 강사를 뽑는 서류전형에는

인적사항과 자기소개서, 그리고 강의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자기소개서까지는 어떻게 우겨썼으나 문제는 강의계획서였다.

내가 지원한 수업은 글쓰기 교양수업이었다.


글쓰기 교양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 없었던 나는

다른 강의계획서 십수개를 보고 대략적으로 틀을 만들었다.

이정도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강의 경력이 없으신데, 어떻게 가르치실 거예요?


처음 면접 본 학교에서는 내게 '강의 경력'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게 이유였다.)

나는 강의 경력이 없는데 어떻게 가르칠 거냐는 말에 대답하지 못 했다.

이미 어떻게 가르칠지 강의계획서에 다 썼는데,

그렇게 물어보는 것은 내가 '어떻게' 가르칠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신입부터 경력을 보면 나는 경력을 어디서 쌓아요!"

하던 우스개소리가 내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이제서야 취준생들이 하는 절망을 맛보았다.

첫번째 실패에 쭈굴쭈굴 다시 작아졌다.  






두번째 학교에서는 석사 지원했을 때의 면접을 떠올렸다.

영화과였던 내가 아무런 소설 포트폴리오도 없이

소설 과정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역시, 앞뒤없는 무모함덕분이었다.

'소설 쓸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에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할 거예요.'라고 무한대답했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서 일단 하겠다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대기실에 들어섰다.

나보다 경력많은 듯한 지원자들을 보면서 다시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낮은 과목인데, 어떻게 끌어올릴 건가요?"

면접에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처음이었다.

"학생들을 직접 글쓰게 하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한다면,

보여지는 것 때문에라도 열심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교수님을 보며 뭔가 희미하게 합격의 기운을 느꼈다.





합격했어요, 근데....


결과적으로 세군데에서 합격통지가 날라왔다.

시간과 거리상 두군데만 가기로 하고, 남는 시간은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박사과정을 끝내고 등단을 해야만 전공수업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있었다.

내가 맡은 교양수업은 내가 배워왔던 문창과와는 달랐다.

나는 배운 적이 없는 맞춤법을 가르치고,

써본 적이 없는 자소서를 가르쳐야 했다.


아, 강의계획서가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구나.

나는 본 적도 없던 맞춤법 책과 자소서 책, 대학교 수업 교과서들을 닥치는대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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