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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답정킴 Sep 04. 2021

교수도 떨려요

처음으로 학생을 대면했을 때


즐겨마지않던 온라인 수업이

코로나의 약세와 함께 막을 내리려던 찰나가 있었다.

그 찰나에 우리는 다시 대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한 학기하고 몇 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영상학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는 일도 종종 있었고,

앞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찍는 일이 많아서

사실 발표 같은 거에 크게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


이제 이 나이쯤 되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쯤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게 오만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강단에 선다고?



우리는 흔히 수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강단에 선다라고 표현한다.

그냥 그렇게 자주 쓰였던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올 때 느낌이란!


면접보고, 계약서를 쓸 때 빼고는 방문한 적 없었던 학교를 방문했다.

이곳 저곳 학생들이 없는 곳이 없었다.

혹시 나도 학생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치없는 기대를 하며

학교를 누볐다.

사실, 헤맸다.


교학처에서 마이크를 빌리고,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처음 대학교를 갔을 때, 처음 대학원을 갔을 때 그 때 기분이 들었다.

나만 이곳의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


빈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익은 교실의 풍경이 보였다.

십수년을 몸 담았던 교실이란 자고로 이런 곳이었지, 그런 아련한 감각과 함께.

내가 있을 곳이 저 많은 책상 중 하나가 아니라 앞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내 첫수업은 25분짜리 온라인 수업이었다.


칠판 앞에 뻘쭘히 서서 책상들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이 한 둘 들어와서 앉았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눈을 피했다.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가 복도로 나왔다.


심장이 쿵쾅댔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너무 긴장됐다.

고작 25분짜리 강의를 하다가 50분짜리 강의를 네번이나 해야한다는 것이

이제와서 묵직하게 다가왔다.


일분 일분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폰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얕보이지 말아야지



"첫 수업인 걸 말하는 게 좋을까요?"


친한 강사 선배님에게 물었다.

한 시간강사의 책을 읽고난 뒤였다.

그 시간강사는 자신이 처음으로 강의하는 것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고 같이 성장해나갔다고 했다. (아마도)


그렇게 고백하면 내가 좀 실수를 해도 양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깔린 질문이었다.



"아니. 말하지마."

오히려 내가 처음임을 말하면

학생들이 더 불안해하거나 얕잡아 본다는 것이었다.

일리가 있었다.

또 다른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아."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해도 좋다는 취지였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대학시절 교수님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했다.

나에게 감정적으로 점수를 줬었던 시간강사님에게도 항의하지 못했다.

그랬던 나를 돌이켜보면 너무 쫄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걱정은 남아있었다.



"제가 모르는 걸 질문하면 어떡하죠?"

"질문을 .... 안 할걸?

 ....네가 질문해도....네가 답해야할걸?"


아하.

내가 너무 오랜 기간동안 대학시절을 잊고 살았었단 걸 알았다.

대부분이 질문하지 않고, 대부분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게 국룰이었는데, 내가 너무 잊고 있었다.

좀 가벼워진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다.


역시, 아무도 질문하거나 대답하지 않았다 ^^







수업이 끝나고



수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진땀을 빼고서야

마지막 시간이 끝이 났다.

랩퍼처럼 마지막인사까지 속성으로 끝내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이 다 떠난 교실에 남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른 학생들이 다음 수업 오기전에

내 물건을 챙겨서 바삐 나왔다.

교학처에 다시 마이크를 반납하고,

내 수업을 들었을지도 모르는 애들을 지나쳐서

그런 애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리고는 귀가.


그러나 그 떨림을 잊지 못해서 정신과에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그리고 그 안정제는 딱 1회분만 소진하고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고, 생각보다 나는 무대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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