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씩씩하게 ~
내 책상 앞에는 탁상달력이 있다.
책을 보다가 고개를 살짝 들면 보이는 자리에 있다. 탁상달력에는 한 달의 일정이 채워져 있다. 한 달에 해야 할 일정들을 보면서 이 달은 어떤 마음으로 지낼지 나름의 글들을 채워 놓는다.
올해는 아직 쓰지 않았다. 특별한 문구가 없어도 힘이 나기 때문이다. 달력에 있는 빨간 머리 앤의 발랄함과 밝음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빨간 머리 앤의 달력.
봐도 봐도 잘한 선택이다.
봐도 봐도 웃음이 난다.
작고 앙증맞은 몸에 귀여운 주근깨를 달고서 윙크하는 모습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앤을 보는 것 자체로 기분이 좋아진다.
매일 앤을 보다 보니 갑자기 내용이 궁금해졌다. 마침 하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1화부터 내가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나왔다. 나는 그저 보육원에서 남자아이를 구해달라는 요청이 실수로 앤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앤이 보육원에서 나온 건 맞다. 스펜스 부인에게 전달한 사람이 여자아이라고 전달한 것이니 스펜스 부인의 잘못은 아니었다. 매튜가 원한 남자아이는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앤이 된 것이다.
스펜스 부인은 앤을 기차역에 내려 주고 떠나고, 매튜는 늦게 나타났지만 정작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기차역에 있었던 사람은 앤 뿐이었고, 앤은 매튜 아저씨랑 마차를 타고 일단 매튜의 집으로 간다.
매튜 아저씨는 여자아이를 비롯하여 여자들과는 부끄러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마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앤은 매튜 아저씨에게 끓임 없이 말을 하고 매튜 아저씨는 앤에게 빠지고 만다.
집에 도착한 앤을 본 마닐라 아주머니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당황한다. 일단 오늘밤은 지내고 내일 스펜스 부인에게 가기로 한다. 매튜는 앤을 다시 보육원으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런 매튜의 마음을 마닐라 아줌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스펜스 부인에게 가는 길에서 앤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말한다. 이 부분도 나는 몰랐다. 앤이 그냥 처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교사 부부가 결혼하여 앤을 낳았다. 아이를 낳고 엄마는 열병으로 죽고, 열흘 후 남편 역시 죽고 만다. 신혼부부의 집에 아이를 돌봐주러 왔던 아줌마는 어쩔 수 없이 갓난쟁이 앤을 맡게 된다.
앤은 무려 세 집을 옮겨 다니며 아이들을 돌보며 자라다가 보육원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함께 지냈던 가족이 흩어지면서 앤은 보육원에 왔던 것이다. 열한 살의 어린 앤 이지만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했을지 눈에 보여 안타까웠다.
스펜스 부인집에 가서 잘못된 상황을 전하고 앤을 다시 보육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차에 다른 부인이 아이들을 돌봐줄 여자아이를 찾는다는 얘기를 한다. 약간 험악하고 무섭게 생긴 아줌마였다. 앤은 그녀를 보며 울상을 짓는다. 마닐라는 스펜스 부인에게 말한다. 매튜가 앤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기에 하루 고민을 해 보겠다고 하며 앤을 데리고 간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마닐라는 애를 돌봐야 하는 힘든 곳에 앤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1화부터 3화까지의 이야기에서 내가 아는 것은 남자아이에서 여자아이로 잘못 왔다는 그것 하나였다. 재미있어서 앤을 보고 또 봤었는데 왜 나는 이런 내용들은 하나도 몰랐던 것이었을까.
앤은 힘든 시간을 지냈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가졌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낸다. 그 나이 또래의 재잘거림이 많은 건 인정한다. 재잘재잘 수다가 장난 아니다. 너무도 많은 수다에 마닐라는 지쳐서 어떤 때에는 조용히 하라고 하니까.
말이 없는 매튜와 한 번도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마닐라 아줌마 집에 앤이 옴으로써 집안에 활기가 넘친다. 말이 없고 조용한 매튜 아저씨이지만 매사에 신중하고, 주의력이 뛰어나며 앤이 원하는 건 제일 잘 알고 있다. 매사에 원리원칙을 가지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마닐라는 앤이 원하는 걸 잘 모른다. 예쁜 옷도 허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매튜는 앤이 하는 작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며 듣는다. 그러기에 앤도 매튜가 원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한다.
매튜가 앤이 좋아하는 캐러멜을 사다 주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달콤한 캐러멜을 먹으며 책을 읽는 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해 준 매튜가 고마웠다.
나는 다시 앤에게 빠졌다.
올해는 앤처럼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갈 것이다.
올해는 앤처럼 밝고 씩씩하게 지낼 것이다.
올해는 앤처럼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당당히 나아갈 것이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야 한다.
주의를 살피고, 뭐가 잘못된 것인지 분석하기보다 그냥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그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