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결혼식에 다녀왔다. 막내 삼촌의 아들 결혼식이었다. 나랑 나이 차이가 무려 스물네 살이 난다. 하도 오랜만에 봐서 어릴 적 얼굴이 있을까 했는데 ……있었다. 삼촌을 닮은 얼굴에 귀여움이 아직 남아 있었다. 신랑도 신부도 싱글벙글 잘 웃었다. 긴장한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
나는 어땠을까? 내가 결혼할 때에 나는 긴장했었나? 그때 당시로 조금 늦은 결혼이었고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떨지 않았고 담담했던 것 같다.
우리는 야외에서 결혼식을 했다. 실내에서 하는 결혼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도 내 의견에 찬성하여 문화예술회관이 있는 강변에서 했다. 쫓기듯이 하는 결혼식에서 여유롭게 하고 싶었는데 막판에 비가 내려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다. 낭만과 뭔가 다른 걸 찾고 싶어서 야외에서 했는데 비가 오면 어찌할 수가 없다. 그 뒤로 내 동생들은 모두 식장에서 했다.
사촌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늦둥이였기 때문이다. 막둥이는 뜻하지 않게 생긴 늦둥이로 숙모를 많이 난감하게 했다. 삼촌은 숙모의 반응과 상관없이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이 있었는데 선물처럼 찾아왔으니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막둥이를 키우면서 삼촌은 다시 태어난 것 같다며 생기가 넘쳤다.
삼촌은 아이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그리 큰 점수를 줄 수 없을 것 같다. 큰애는 아버지의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둘째는 어릴 때부터 많이 아팠다. 삼촌에게 둘째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픈 손가락을 감싸고 감싸다 보니 둘째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삼촌의 아바타처럼 살았다. 둘째는 작년에 하늘로 갔다. 동생의 비보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픔 뒤에 치러진 혼사기에 막둥이의 결혼은 조금 엄숙하면서 조용했다. 다른 결혼식에서는 잔치 같은 흥겨움이 있었지만…….
요즘 주례를 보기 드문데 학교 교수님을 초빙하여 좋은 얘기를 들었다. 사회학과 교수답게
‘며느리를 딸 같이 대하고, 사위를 아들처럼 여긴다는 생각 보다 며느리는 며느리답게, 사위는 사위답게 대하면서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어 주고 지지해 주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는 당부는 의미 있게 들렸다. 신랑 친구가 차분한 축가를 불렀다. 신랑 신부 행진으로 식은 마무리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식장에서 사용된 생화를 빼서 작은 꽃다발로 만들어 오신 분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생화의 향기는 짙었다.
결혼식에 와서 꽃을 재활용하여 꽃다발을 받아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받았다.
결혼식 입구에 장식된 꽃 터널이 꽃다발로 변신하는 모습은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선물이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