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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들의 고백

- 거울 치료

by 정상이

20250522_165245.jpg 이슬비가 내리는 강변, 하늘이 안개로 덮인 느낌이다.


오늘도 날이 흐리다. 요즘 비가 잦다. 약한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기온 역시 들쑥날쑥이다.

며칠 한여름처럼 더웠다가 다시 내려갔다.

바닥이 차가워서 보일러를 조금 돌렸다.

날씨가 이러니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날씨가 사람의 감정을 흔들 수 있듯이, 말도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말이라는 게 많이 해도 안 되고, 너무 안 해도 그렇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다.


나는 아들이 둘이다. 둘 다 다정한 편이지만 큰 아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 반면에 작은 아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사소한 문제도 같이 고민하고 해결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많은 걸 의존하고 너무 많은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일을 하고 와서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파에 누워 가만히 듣던 아들이,


“엄마, 요즘 내게 너무 많은 얘기를 하는 거 같아. 어느 날은 원래 엄마가 이 정도로 말이 많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거든. 궁금하지 않은 얘기를 너무 많이 해.”

그 말에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래?…….”

“궁금하지 않은 얘기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


내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수다스러웠나.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

아들의 말에 기분이 이상했지만 입을 닫았다.

듣고 싶지 않은데 주절거릴 수는 없으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말을 하려다가 삼켰다.


또 아들은 텔레비전을 볼 때 의문형으로 말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냥 하는 말인데 내가 의문형으로 말하면 자신이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한다.

"어 저건 아닌데 왜 저러지?" 혼잣말이듯 아닌 듯하는 내 말에, 아들은 신경 쓰이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하는 행동을 보며 나는 반응을 하고, 그 반응에 아들은 자신이 답해야 한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지고 혼잣말도 늘어난다고 한다. 나 역시 가끔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이랑 대화를 한다.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냐 이 길이 맞아하면서 대꾸를 한다. 아직은 이 정도의 혼잣말이다.

지난주에 빨래방에 갔었다.

한가롭게 앉아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이불을 손수레에 담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들어오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저번에 한 번 오고 두 번째이긴 한데. 하이고 걱정이네.” 그러면서 세탁기의 용량을 보면서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디에 넣는 게 낫나.” 세탁기는 30KG 두 대와 25KG 두 대가 있었다. “이불이 두 개인데 어디다 넣어야 하나.”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30킬로에 넣고 있었다. 이불의 두께는 제법 있어 보였다. 두 개를 다 넣기엔 버거웠든지 빼내면서, “25킬로에 나누어 넣는 게 낫겠지요” 하면서 나를 봤다. 나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분은 이불을 넣고 세탁기의 문을 닫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아 이게 왜 안 닫히지” 하더니 “돈을 안 넣어 그런가” 하면서 동전 교환대로 갔다. 돈을 넣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왜 돈을 안 먹지. 와이리 안되노.” 연신 혼잣말이다.

나는 다가가서 돈을 받아서 다시 넣었다. 동전은 오백 원짜리로 교환되었다. 문이 안 닫히는 세탁기의 문도 닫았다. 오천 오백 원을 넣고, 다시 오천 오백 원을 넣어야 하는데 만원만 가져온 할머니는 어찌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이었다.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있는 나를 향해 “혹시 천 원만 빌려 줄 수 있을까예?” 하며 물었다. 나는 그분의 세탁기에 오백 원짜리 두 개를 넣었다. 그리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집이 요 앞이라 금방 가져다 드릴게예.”

나는 자리에 앉아서 책을 봤다. 만약 그분이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천 원이 없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빨래방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연신 혼잣말을 하는 그분을 보며 나는 아들이 한 말이 떠올랐다.

울 아들이 느낀 기분이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내 행동을 생각하게 하는 거울치료를 경험했다.

질문은 확실하게 하고, 혼잣말은 상대방이 들리지 않게 작게 하고, 상대방이 궁금해 하지 않을 말은 하지 않는다.


한 집에서 사이좋게 살아가기 위해 작은 방법들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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