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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Aug 29. 2022

따로 또 같이

필요하면 함께, 아니면 각방으로

결혼한 지 23년. 

 23년이라는 시간만큼 내가 늙었다는 것이고, 애들은 그만큼 자랐다는 뜻일 것이다. 애들이 컸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내가 늙었다는 건 슬프고 아쉬운 일이다.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네에서 자주 만나는 언니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다 보면 요즘 거의 대부분 각방을 쓴다는 얘기다. 

 “야, 코 고는 소리가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 아나?”

 “따로 자니까 그리 편할 수가 없다.”

 “텔레비전을 잠들 때까지 켜 놓고 있는 사람과 어떻게 같이 자노?”

 “근데, 따로 자려고 해도 방이 없는데 어쩌지?”

 “니가 바닥으로 내려가면 되지.”

 침대를 두고 바닥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은 괜찮다며 우리는 한 침대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잠을 청했다. 

 며칠 전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그날도 무척 더웠다. 에어컨을 켰지만 찐득하니 더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컨디션도 좋지 않았는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짜증이 났다. 


 그날 남편은 아는 사람과 한 잔 하고 온다고 했다. 혼자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남편이 집에 왔다. 씻고 나오더니 자꾸 이런저런 시비를 걸었다. 여느 때 같으면 웃으며 받아 주었겠지만 그날따라 신경질이 났다. 대충 대꾸를 했다. 그랬더니 또 다른 걸로 딴죽을 걸었다. 실실 웃으면서 장난을 치는데 짜증이 확 밀려왔다. 결국 나는 남편을  방에서 쫓아냈다. 


 “날도 덥고 자기가 너무 신경질 나게 만들어서 안 되겠다. 작은애 방에 가서 자.”


 평상시 같으면 안 간다고 니가 가라 할 텐데 그날은 또 알겠다며 베개를 들고 갔다. 


 혼자서 여유롭게 자니까 괜찮았다. 아주 편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에게 작은 애 방에서 자니까 어떠냐고 물었더니 좋았단다. 나한테 뭐라고 하면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그렇게 우리는 각방을 쓰게 되었다.  따로 자니 서로 편했다.

 아 언니들이 말한 자유로움이 이런 것이구나.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옆에 걸리는 사람이 없으니 더위도 저만치 물러간 느낌이었다. 우리의 각방은 그렇게 지속되었다. 


 그러다 비가 심하게 온 날, 천둥번개가 치고 난리가 아니었다. 빗소리가 마치 물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약간 무서웠다. 비로 인해 기온이 떨어졌다. 더위가 저만치 간 느낌이었다. 마침 큰애가 여행을 가고 없었다. 

 “오늘 비도 오고 그런데 그냥 같이 잘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대답 먼저 한 남편은 나를 한참 보고 있더니,

 “니 좀 무서운가 봐. 빗소리 때문에. 하하하”

 나는 그렇다고 했다. 천둥 번개만 무서운 게 아니라 요란스럽게 떨어지는 빗소리도 겁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곁에 누군가 있는 게 힘이 될 때가 있고, 귀찮을 때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가끔은 같이, 또 가끔은 떨어져서 지내게 될 것이다. 그게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잘 늙어가야 할 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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