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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Dec 22. 2022

팥죽이 좋다.

- 너무 많이 먹었나?

 점심으로 큰아들과 팥죽을 먹었다. 콩나물, 톳나물, 도라지나물과 먹으니 고소하다. 어제저녁에는 남편과 먹었다. 동지를 핑계로 두 그릇을 먹었다. 팥이 주는 고소함과 새알이 주는 쫀득함이 좋다.  


 몇 년 전까지는 동지가 되면 엄마랑 절에 가서 팥죽을 먹고, 얻어 왔다.


 오늘은 시장에 나가서 사 왔다. 


 팥죽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할 줄은 모른다. 팥을 삶고 새알을 빚는 긴 과정을 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 과정이 재미있을 수는 있다. 다만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정성을 다해 만들어 내는 사람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솔직히 나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식구가 적기에 사 먹는 게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온 동네가 팥죽을 만들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서 친구네 집을 순회하며 팥죽을 먹고 다녔다. 나는 새알 위주로 먹었다. 나이 수만큼 먹어야 된다고 했지만 그런 말은 귓등으로 흘릴 줄 알았다. 


 20대에 직장생활을 할 적에 다른 것은 상관없는데, 동지가 되면 꼭 팥죽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해에는 함께 죽 먹을 사람이 없었다. 죽 파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아마 내 시야가 좁아서 그러했을 것이다. 겨우 찾아낸 팥죽이 마트에서 파는 것이었다. 많이 달았지만 밤이 들어 있어서 만족하며 먹었다. 


 팥죽을 먹고 나면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고, 내년 역시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그것보다 팥죽을 먹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은 아닐까. 


 모든 죽을 좋아하기는 한다. 애들이 좋아하는 게살죽, 달콤한 호박죽, 영양만점 전복죽, 담백한 흰쌀죽. 그러나 내 입은 고리타분해서 팥죽이나 호박죽이 제일 좋다. 일 년에 죽을 몇 번이나 먹을까. 거의 없다. 평상시에 죽 먹을 일이 없으니 동지가 되면 더 먹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들과 맛있게 먹었지만 조금 많이 먹은 모양이다. 배가 꽉 찬 느낌이다. 서둘러 소화시키러 밖으로 나가야겠다. 뿌듯한 만족감으로 씩씩하게 산책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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