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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Mar 24. 2023

밖에는 비가 내리고, 내 마음엔 폭풍이 치네.

-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나를 잡고 흔든다.

  

 “아니 용용, 물을 이렇게 틀어 놓고 있으면 어째! 용용. 내-말- 들려?”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하는데 화장실에 물소리가 나서, 아들이 이제 들어와서 씻는다고 생각하여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 보통 샤워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초과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화장실로 가는데, 어? 불이 켜져 있지 않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더니, 아무도 없고 세면대에 물만 세차게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뜨거운 물이…. 어이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방으로 들어와서 왜 물을 잠그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어. 그러게.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겠네.”

 그러더니 한참 있다가,

 “그렇다고 그렇게 큰소리로 말할 건 아니잖아.”

  “내가 그랬나? 미안. … 지금 책에 빠져 있어서 나도 모르게 흥분하고 말았네. 미안해요.”


 맞다. 나는 지금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영화를 봤었다. 이제 그 잔상은 다 사라졌기에 책을 빌렸다. 시작부터 이상했다. 내가 기대한 그림이 아니었다. 


 ‘폭풍의 언덕’에 사는 사람들은 히스클리프, 캐서린, 헤어턴, 조지프이다. 조지프는 이 집 하인임에도 입에 욕을 달고 살면서 손님에게 함부로 하고, 헤어턴은 아들 같으면서 모양새는 거친 하인 같다. 캐서린은 며느리이지만 히스클리프는 거친 말을 하고 밥값을 하지 못한다고 나무란다. 시작부터 드라마의 막장 같은 분위기이다.      


 1847년 12월에 ‘폭풍의 언덕’이 출판되었다. 평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샬럿이 쓴 ‘제인에어’의 호평과는 반대이다. 브론테의 남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언니(샬럿)와 동생인 앤(아그네스 그레이)도 책을 썼다. 브란테 남매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떴다. 에밀리가 1848년, 1849년엔 앤, 1855년엔 샬럿이 사망했다.      


 ‘제인에어’가 소화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책이라면, ‘폭풍의 언덕’은 색이 진한 캐릭터들의 광기와 학대로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가슴이 마구 요동치는 책이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사랑이라는 게 뭔지 알고 있었을까?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130p)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사랑은 땅 속에 파묻힌 변치 않는 바윗돌 같아.(133p)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캐서린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차이이고 비극의 시작이다.


 히스클리프는 힌들리 언쇼가 리버풀에 갔다가 길가에서 굶고 있는 아이였다. 가족을 찾아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히스클리프의 갑작스러운 등장을 반기는 가족은 없었다. 모든 가족이 싫어할 때 힌들리 언쇼만 히스클리프 편을 들어주고 아껴 주었다. 그러나 힌들리 언쇼는 사망하고 만다. 히스클리프는 집안의 구박과 학대를 묵묵히 견딘다. 캐서린이 그와 놀아 주고 사랑하지만 히스클리프가 집을 나가서 3년 후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히스클리프는 3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 ‘폭풍의 언덕’에 살면서 언쇼 집안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러면서 복수를 시작한다. 


 히스클리프는 잘생겼지만 음침하고 가까이하기 무서운 존재, 캐서린은 자기 멋대로이면서 병에 걸려 광기를 부리고, 히스클리프와 결혼 한 이사벨라(에드거 린턴의 여동생)는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작품에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복수를 꿈꾸고 두 집안의 몰락을 위해 지팡이를 휘두르지만 결국 그 자신마저 죽음에 가까이 왔을 때 의미 없음을 느낀다.     


 두 집안을 무너뜨릴 작정으로 쇠지레나 곡괭이니 구해놓고, 헤라클레스 같은 힘을 기르려고 나 자신을 단련시켰는데, 막상 준비가 모두 끝나고 힘이 생기니까 두 집 지붕에서 기와 한 장 들어낼 의욕조차 사라져 버렸어.(500p)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아들과 캐서린(에드거 린턴과 캐서린의 딸)을 결혼시킴으로써 린턴의 재산까지 차지한다. 그러나 병약한 히스클리프의 아들은 이내 죽고 만다. 


 히스클리프는 무엇을 이루었나? 자신이 사랑한 캐서린을 잃었고, 자신을 사랑하려고 한 아내(이사벨라)와 아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음으로써 둘 다 잃었다. 잃은 것은 많은데 얻은 건 없어 보인다. 


 히스클리프가 힌들리 언쇼의 집에 왔을 때, 구박이나 학대가 아니라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어제와 오늘, 비가 내린다. 봄비이다.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머리와 마음을 다독여 준다. 어리고 약한 히스클리프가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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