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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Aug 12. 2023

일상의 공포

-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민음사, 2022)

    

 체호프의 단편을 읽고 있다.

 ‘공포’에서는 드미트리와 그의 친구가 등장한다. 드미트리는 대학을 나왔지만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친구가 보기에 현재 그의 삶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일에 지쳐서 저녁을 먹고 나면 자기 바쁘다. 드미트리 친구는 그의 농장에 자주 놀러 가고 한 번 가면 며칠 머문다. 그는 친구의 농장을 좋아한다. 또 친구의 아내를 좋아한다. 친구의 아내는 너무 예쁘다. 눈부신 머릿결과 우아한 미소, 향긋한 냄새까지. 그러나 그는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는다. 


 어느 저녁, 둘은 멀리까지 시장을 보러 간다. 그곳에서 드미트리는 말한다. 

“당신이 보기에 그토록 행복할 것 같은 나의 가정생활이라는 게 사실은 나의 가장 큰 불행이자 공포입니다.”-23쪽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각들을 내가 얼마나 겁내고 있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나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일에 몰두합니다. 밤에 깊이 잠들기 위해서 농장 일로 자신을 혹사시키는 거죠. 애들과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문제 될 일이 없겠지요. 하지만 이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22쪽


 드미트리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3년을 쫓아다녔다. 여러 번 거절하다가 결국 승낙을 했다.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드미트리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날 밤, 친구는 드미트리의 아내를 보며 기분이 좋다. 드미트리의 아내가 드미트리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드미트리 아내 역시 친구를 좋아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둘은 격정적인 키스와 사랑을 나눈다. 새벽 세 시에 친구 아내는 방을 나가고 그때 드미트리가 그 장면을 본다. 다음 날 친구는 드미트리 집을 나오고 다시는 찾아가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문에 둘은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단다.

 

 이 사건 이후 드미트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더한 공포가 찾아왔을까, 아니면 공포가 사라졌을까. 아내가 친구와 불륜을 저질렀는데 아무렇지 않았을까. 


 드미트리 아내는 어땠을까.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정숙한 아내가 되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남편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고 나서 남편을 사랑하게 될까? 이제 드미트리 아내 역시 일상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인가. 


 드미트리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은 아내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여전히 아름답지만 아내는 드미트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만 같다. 드미트리는 불안하다.  


 삶이란 무엇일까. 평범한 일상은 무엇일까. 어떤 삶이 공포스럽지 않을까.

   

 일상의 공포는 뭘까. 매일 반복되는 삶이 공포일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이 공포일까. 지루하다고 말한 아내는 이제 일상이 지루하지 않을까.

 

 이 소설은 참으로 묘하다.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평범하다. 평범한 삶은 지루하다. 누군가 아프고, 다치고, 사고가 나면 일상이 깨진다. 일상이 깨지면 평범했던 시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모두 경험해 봐야 아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지속된다.


 내게 일상은 공포인가. 매일 내게 주어진 일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은 가고, 이루어진 것은 없다. 그런 삶이 반복되는 게 공포이다. 이대로 내 삶이 의미 없이 끝날까 봐 공포스럽다. 그러나 내가 딱히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매일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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