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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May 13. 2023

제사는 대물림될 수 있을까.

   

제사상에 대한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가져옴.

 아버지는 5남매의 셋째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밀어주는 좋은 관계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할머니와 엄마는 사이좋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였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조용하고 인자한 분이셨다. 


 내게도 좋은 할머니였지만 불만이 하나 있었다. 며느리들에게 해야 할 말은 했으면 했다.  할머니는 네 명의 며느리를 두었지만, 며느리에게 그 어떤 잔소리나 요구사항이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제사나 명절이 되면 우리 집에서 음식을 한다.  음식을 하러 오는 며느리는 숙모 두 분이었는데 막내 숙모는 항상 음식을 마무리할 때쯤 왔다. 큰엄마는 거의 오지 않았다. 이럴 때 할머니가


 “다음에는 오전에 도착하여 함께 음식을 만들도록 해라.”


 이 한마디는 했으면 했다. 둘째 며느리인 엄마가 동서들에게 일찍 오라는 말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엄마가 아무리 할머니에게 부탁을 해도 할머니는 웃으시기만 하고 그냥 넘어갔다. 


 매번 엄마만 일을 많이 하는 상황이 나는 너무 싫었다. 물론 나와 여동생은 당연히 도와야 했다. 당시 내 눈에는 엄마가 일을 많이 하고, 숙모들은 조금 거들기만 하는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편은 6남매의 막내이다. 누나 네 명과 형이 있다. 결혼을 하고 명절이나 제사에 음식을 한다. 초반에는 시댁에 가서 부침개며 튀김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음식은 동서와 내 차지가 되었다. 


 일을 하기에 제사가 되면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할 일을 나누었다. 음식을 잘하는 손위 동서는 나물과 탕국, 생선을 하고, 나는 튀김과 부침개를 하기로 했다. 각자 알아서 음식을 만들어 시댁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명절에는 함께 모여했다.

 

 현재 결혼을 한 지 24년. 두 번의 제사(시할머니, 시할아버지)에서 세 번의 제사(시아버지)를 지내다가 시할머니와 시할아버지의 제사를 합쳤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다시 제사는 세 번으로 늘어났다. 


 아주버님이 퇴직을 할 즈음 제사를 다 같이 합치자는 의견이 나와 현재 제사는 한 번이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형제간의 만남은 줄어들었다. 명절이 되어도 아주버님의 식구들과 우리 식구만 만난다. 당연히 차례 음식을 많이 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명절이 되어도 함께 모여 음식을 하지 않는다. 나 역시 튀김이나 부침개를 만들지 않고 마트나 시장에서 차례상에 올릴 것만 산다. 


 직접 만들지 않으면 성의가 없다고 말한다. 힘들고 어렵게 만든다고 정성이 들어가는 것일까. 몸이 편하면 마음도 넉넉해진다. 명절이나 제사에 가뿐하게 만나서 서로 즐겁게 지내다가 헤어지면 모두가 좋은 일이다. 내 몫의 음식은 사도 되지만 동서가 만들어야 하는 탕국이나 나물, 생선은 직접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래서 차례비용을 동서에게 따로 준다. 고생한 대가이며 고마움에 대한 표현이다. 


 5월 4일은 제사였다. 하필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내 컨디션을 생각하면 바로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시댁으로 갔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상을 펴고 준비한 음식들을 올리고 제사는 진행되었다.  


 네 명의 시누이 중 두 명이 참석했다. 아주버님과 동서, 남편과 나, 큰아들. 7명이 함께 한 제사는 초촐하면서 정겨웠다. 시누이들도 근 4년 만에 참석했다. 큰 조카는 멀리 있어서 거의 참석하지 못한다. 큰 조카가 장손이지만 이제 그런 것에 대한 의미는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죽으면 내 자식들은 제사를 지낼까? 나는 지내지 말라고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죽은 날, 모여서 함께 밥을 먹으며 우리를 추억하면 되지 않을까. 추억의 장소는 그때그때 달라지면서. 그러면 제삿날 음식을 해야 하는 부담에서 사라지고 오랜만에 가족이나 형제들이  만나는 즐거운 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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