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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May 25. 2023

옥천사와의 인연

인터넷에서 가져온 이미지( 걸었던 길과 약간 비슷함)

 살다 보면 자신의 인생이 막막하고 갑갑해지는 순간들이 온다. 대학 3학년 때가 그런 시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어린 나이인데 그때는 인생 다 산 것처럼 느껴졌고, 앞으로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뭐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답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이 힘들었다. 그런 나를 본 친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옥천사’에 가 보라는 말을 했다. 친구의 말에 무슨 해답을 찾은 것처럼 길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고성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탔다. ‘옥천사’ 입구에 내렸다. 분명 입구였지만 절은 보이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어중간한 시간 때문인지(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오후였다.) 사람들이 없었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이었고 시간은 정지해 있는 듯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입구에 서니 멍해졌다. 


 나는 여기 왜 온 것일까. 


 일단 왔으니 가 보기로 했다. 땀을 닦아 가면서 걸었다. 한참 걸었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같이 가요.” 

 나를 부를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어떤 꼬마가 가방을 메고 오고 있었다. 나는 그 꼬마를 신기하듯이 봤다.

 “얘, 어디 가는 중이야?”

 “누나는 어디 가는데요?”

 “나는 옥천사에 가는 중이지.”

 “저도 그래요.”

 “…….”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가 절에 간다고? 그것도 혼자서? 이런 생각을 읽었는지 꼬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절에서 살아요. 스님이 저를 키워주고 있어요. 아. 엄마랑 아빠가 이혼을 하고, 어린 동생은 다른 사람이 키워주고 있어요.”


 꼬마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가족 얘기를 했다. 그렇게 꼬마와 나는 절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며 걸었다. 꼬마는 처음 본 나를 스스럼없이 대했다. 나는 그런 꼬마가 신기했다.


 절에 도착하고 조금 있으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절에 있는 사람들은 늦은 시간에 온 나를 걱정했다.

 

 “진주 가는 버스가 좀 있으면 없을긴데…”

 “비가 오니 할 수 있나. 우리가 내려갈 때 정류장까지 태워 주꾸마.”

 꼬마는 절에 도착하고 나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꼬마에 대해 물었다. 

 “꼬마한테 너무 맘 쓰지 마소. 애가 정이 고파서 아무한테나 말을 하고 가까이하려고 혀니께. 계속 줄 정이 아니면 그만둬.”


 그 말에 나는 입을 닫았다. 절에 있는 사람들의 배려로 정류장까지 와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비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줄기차게 내렸다. 쏟아지는 버스 속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였다. 1집 앨범이었을 것이다. 미니카세트에서 들려오는 강렬한 사운드와 김종진의 걸쭉한 목소리는 밖에서 쏟아지는 빗소리와 잘 어울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꼬마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했다. 그 꼬마에게 편지를 할까 말까 고민을 했다.


 ‘편지를 해서 뭐할껀데? 니가 꼬마를 책임질 수 있어?’ ‘꼬마한테 마음 쓰지 마소.’


 꼬마로 인해 내 고민은 저만치 도망가고 없었다. 


 나는 지금 상상한다. 꼬마는 잘 커서 좋은 형아가 되고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문득문득 생각난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생각난다. 


 ‘옥천사’는 내겐 그런 곳이다. 꼬마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내 고민의 흔적이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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