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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이 Nov 18. 2023

바람이 분다.

강변에 있는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가을이 와서 반가워하고 있는데 ……아직 즐기지도 못했는데, 벌써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까지 분다.


 바람이 불어도 운동은 나갔다. 처음엔 바람 때문에 춥지만 걷다 보면 기온이 올라가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기온이 내려간 상태에서의 바람은 반길 수가 없다. 점심이 되어도 10도 이상 올라가지 않고 있다. 문을 열고 밖의 움직임을 살피니 여기저기에서 바람에 날리는 물건들 소리와 바람 자체가 내는 씽 쌩 하는 음산한 소리에 기가 죽는다. 차가운 기온에 몸의 근육이 놀라 아픈 것보다는 따뜻한 방에서 하루 게으름을 피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자연은 그 무엇보다 위대한 존재이다.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비가 오면 비 온다고, 눈이 오면 눈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거나 계속할 수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날씨가 우리의 감정을 가지고 논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은 자신도 모르게 축 쳐지면서 가라앉지만 화창한 날은 표정이 밝아지고 웃음 짓는 일이 많아진다.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음력으로 11월에 태어났으니 아주 추울 때였다. 우리 4남매는 다 겨울에 태어났다.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덜 탄다. 


 중학교 어느 겨울에 엄마는 내복을 꺼내 놓으셨다. 나는 내복이 입기 싫었다. 내복을 입으면 뻑뻑하여 걷기 힘들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고민하다가 내복을 옷장 깊숙이 숨겼다. 그해 겨울도 추웠지만 내복 없이 잘 다녔다. 지금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 그렇다고 추위를 못 느끼는 건 아니다. 따뜻한 겉옷을 입으면 견딜만하다. 


 나는 남들이 많이 하는 목도리를 하지 않는다. 안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갑갑하여 못 한다. 내 목에 뭔가가 감기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나는 첫째이다. 엄마의 자궁을 나오는 첫 번째 자식이었다. 좁은 질을 넓히면서 나오는 임무를 수행했기에 다른 자식들보다 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하하 그냥 내 생각이다. 아무리 추워도 목에 뭔가를 두르지 못한다. 


 더운 여름이 좋은가, 아니면 추운 겨울이 좋은가. 예전에는 당연히 겨울이 좋다고 했다. 여름에는 벌레가 생기고 땀이 많이 나니까. 


 지금은 겨울이 좋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아직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추운 바람이 조금씩 꺼려지는 건 사실이다.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겠지만 바람은 적게 불었으면 좋겠다. 겨울의 햇살을 느끼며 느긋하게 걷다가 뜨거운 어묵과 붕어빵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으니까. 올 겨울은 그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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