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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표 Oct 22. 2024

일은 결국 일이라는 것

    2021년, 20살의 난 마술 회사인 '니키아티브'에서 입사 소식을 받게 되었다. 그곳은 취미로 마술을 시작했던 2016년부터 꾸준하게 챙겨 보았던 마술 크리에이터 니키님이 대표로 계시는 회사이다. 취미를 직업으로 만들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설레는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출근 하루 전 설레는 마음을 도저히 가라앉힐 수 없어 니키님의 유튜브 영상을 정주행 하다가 피곤함이 찾아올 때쯤 눈을 감았다.

출근이 믿기지 않아 찍었던 사진

    어느새 출근 첫날이 다가왔고, 코 앞의 거리에서 니키님을 뵙게 되었다. 굉장히 재밌고 신기할 뿐이었다. 출근 첫날엔 니키 선생님은 종이비행기 마술을 준비하시고 계셨는데,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도구를 만드시고 연습하고 회의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가면서 유튜브 콘텐츠를 함께 준비하고, 마술을 조금씩 배우는 일련의 과정들이 처음엔 그저 재밌었고 빠르게 1~2달이 지나갔다.




    니키 선생님의 무대가 아닌 나 자신의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마음의 짐이 가득 생긴 기분이었다. 다른 프로 마술사들처럼 탄성이 터져 나올 만큼 세련된 무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밤새가며 나의 수준에서는 하기 어려운 마술들로 무대를 구성하였다. 회사에서 3시간씩 쪽잠을 자며 준비했던 과정이 그리 재미있진 않았다. 완성된다는 기분보다 어설프게 무대가 어찌어찌 마무리가 되어가는 과정에 찝찝한 기분만 남았지만 별 수가 없어 계속 준비했다.

회사에서 밤을 새우던 날 업로드한 인스타그램 스토리

    그렇게 니키 선생님 앞에서 준비된 공연을 테스트하는 날이 다가왔고, 각오는 했지만 당연하게도 무대의 구성, 완성도나 숙련도에서 있어서 좋은 말을 듣지는 못했다. 난이도가 높은 마술들로 구성이 되어 있던 공연을 학예회에서 할 법한 꽤 쉬운 수준의 마술들로 다시 구성하여 두 번째 테스트를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이미 흥미를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다. 취미로서 많은 마술들을 해봤지만, 나의 마술이 평가되는 그런 순간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생소했던 무대 마술을 하는 것까지 나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찾아왔다. 나에게는 마술이 딱 그 정도의 흥미 수준이었나 보다.


    나는 마술을 취미로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서서히 싫어지고 있었다. 나는 마술이라는 소중한 취미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마술회사에 계속 남아있으면 그것조차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마술회사의 퇴사를 결정하였다.


    '니키아티브'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잘 되는 회사이기에 어떻게든 버티기만 하면 솔직히 안정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마술이 나의 마음속에 그저 일로만 자리 잡고 회사 밖에서는 아예 마술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았고, 그런 태도라면 마술회사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회사를 퇴사하며 '마술을 직업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미련이 남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마술 오디션 '더 매직스타'가 방영되었다. 그곳에서 정말 멋지게 활약하는 많은 마술사들을 보며 만약 내가 마술사로 남았다면 저곳에서 멋지게 할 수 있을까라는 가정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뿐이다. 그날 마술회사를 나갔던 나의 선택이 후회가 되거나 미련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마술 중에 사람들과 근접한 거리를 두고 하는 '클로즈업 마술'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마술로 수익화를 이루기 위해 무대 마술을 아예 안 하기는 쉽지 않다. 행사 관계자들 입장에선 아직 클로즈업보다 무대 마술을 원하는 수요가 훨씬 많기에 그렇다. 결국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나에게 돈을 줘야 하고, 그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물론 높은 명성과 지위를 가진다면 내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협상테이블을 끌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높은 명성과 지위를 얻게 되는 과정에서는 날 부르는 누군가의 입맛을 맞춰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재미와 보람을 찾아 성장하는 사람들이 한 분야에서 결국 살아남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보드게임을 제작할 때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디자인과 마케팅, 검수, 미팅 등의 업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바리스타를 하더라도 커피만 만들 수 없다. 엄청난 양의 설거지와 청소, 쓰레기 정리 등 결국 각자 좋아하는 그 일을 위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어느 분야든 존재한다. 취미를 일로 만들고 싶은 나로서는 앞으로 꼭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일은 결국 일이라는 것. 선호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꼭 온다는 것. 선호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끝에 높은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것.


    만약 취미를 일로 바꾸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잦은 빈도로 선호하지 않는 일을 감수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테스트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시도, 테스트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많은 도전을 해보며 실패를 겪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중이다. 좋아하는 줄 알았던 분야가 나중에는 싫어져서 취미로도 간직하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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