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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st Aug 04. 2024

강사의 업무시간은 24시간입니다

구인광고만 봐도 원장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수업이 6시인데, 2시에 출근하라는 사람은 강사를 손에 쥐고 통제하려는 스타일이다. 강사를 못 믿기에, 출근시간 2시, 3시로 세팅한다. 수업 준비하더라도, 학원에서 보이는 곳에서 하라는 것이다. 반면, '수업 30분 전에만 오시면 됩니다'라는 사람은 강사에게 자율성을 준다는 의미이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는 나만의 생각일 뿐이다.


진짜 강사 업무는 퇴근 후에 이뤄진다


칼퇴근, 일찍 출근,.... 이런 형식적인 것에 신경 쓰는 사람들, 특히 (학원) 운영진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게 그거니까, 근시안적으로 판단하는데, 진짜 강사 업무시간은 퇴근 후에 이뤄진다. 학원에서 상담하고, 일지 쓰고, 잡무 하다 보면, 강의 연구할 시간이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그러면 집에 가서 씻고 새벽 늦게까지 연구하다 자는 것이다. 출퇴근길에 인강(인터넷강의) 듣고, 아이디어 떠오르면 폰으로 메모를 한다. 심지어 예전 동료 강사샘은 문제풀이가 아직 서툴러서, 주말에 가족들과 놀이공원에 갔을 때도, 아내와 아이들만 놀이기구를 태우고, 자신은 벤치에 앉아 문제를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강사들 페이가 다른 직군에 비해 좀 높은 거 같지만, 근무시간 대비로 계산할 때는 아마 최악일 것이다. (병원에서 잠 2~3시간자며 근무하는 인턴, 레지던트 제외하고는)


업무평가는 결과로 하는 것이 현명하다


강사 출신 원장도 이런 걸 알 텐데, 원장 자리에 앉으면, 사람이 그렇게 되나 보다.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평가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예전 행정학을 공부할 때, 이런 것을 자동적 합리화라고 했던가? (기억이 잘 안난다) 과정이 합리적이면 결과도 합리적일것이라는 생각의 오류이다. 강의는 잘하는데, 학생들이 떨어져 나간다. 아는 건 많은데, 학생들이 싫어한다. 관리를 철저히 하는데, 애들이 치를 떤다. 시험은 잘 보는데, 학원을 나간다. 이 모든 것들이 과정이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결과가 합리적이지 않은 수많은 사례들이다. 그래서, 결국 업무평가는 그런 부차적이고 절차적인 면이 아니라, 결과로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런 면에서 예전 학원에 근무할 때 원장님 마인드가 무서우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무조건적인 결과주의


얼마나 자유로웠냐면, 일단 원장님을 보기가 힘들다. 교무실에서 이어폰 끼고 음악 들으면서 문제 풀고, 먹으면서 문제 풀고, 교무실을 비우고 다른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든 말든, 애들이 졸린 거 같으면 음악을 틀면서 수업을 하든 말든, 눈에 보이는 수치로 판단하고 얘기한다. 이렇게 자유를 준다고 절대 망하지 않는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아주 냉정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유롭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시간은 24시간에 육박한다.


뭐든지 자기 손에 움켜쥐고 사람 못 믿고 하나하나 확인하고 통제한다고 과연 학원 매출에 도움이 될까?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강사라면, 안 그래도 할게 태산 같은데, 무슨 규칙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들면, 결국 좋은 강사는 나가고, 그저 자리만 지키려는 수동적인 강사만으로 채워질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연구만 하고, 항상 방어적인 태도만 취할 뿐이며, 노력은 최소로 하되, 페이는 최대로 받으려는 개인적 효율만 추구하는 강사들로만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중간 관리자 입장에서는 자기 입맛에 맞는 인력이지만, 학원의 성장에는 하등 도움이 안되는 부류인 것이다.


결국 학원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출퇴근 시간으로 강사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처럼 칼퇴근하는 이유가 집에서 편하게 수업 준비하려고 하는 강사도 있다. 이 말에는 역으로 일찍 출근하거나 업무를 남보다 더 많이 했음을 과시하는 강사는 실속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된다. 자신의 실적에 자신이 없기에 보여주기식에 급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쓰려거든 믿고 맡기며, 믿지 못하겠거든 쓰지도 말라했다. 수많은 어중이떠중이 강사들에게 데인 원장은 새로온 강사 자체를 불신할 것이 아니라, 그런 강사를 뽑은 학원의 채용시스템과 자신의 안목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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