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고,
나도 곧 영국을 떠난다.
아주 떠나기 전에 여행을 할 예정이라, 그때까지 이 집에서 지낼 날은 한 손에 꼽을 정도.
아주 기본적인 생활용품 몇 가지만 남기고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처분했다. 가구들은 싸게 팔고, 주방 살림, 책, 장식품 등은 친구들에게 주고, 옷가지, 신발 등은 기부했다.
정리하다 보니 뭐가 그리도 많은지.
3년 동안 야금야금 정말 많이도 사들였다.
주방용품점에서 예쁜 그릇들을 보면 정신줄을 놓고,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커다란 쇼핑백 몇 개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적이 수어 차례다.
여행을 가면 가는 곳마다 옷을 사고 냉장고 자석도 산다. 내 여행에 대한 기록이라는 핑계다.
커피에 미쳐 서로 다른 커피 제조 용구들을 사 모으다 보니, 케멕스, 에어로프레스, 나노프레소, 모카포트 두 개, 프렌치프레스, 심지어 전기 커피그라인더까지 없는 게 없다. 내 커피 테이블을 완성하겠다고 사이폰과 더치커피 추출기구까지 사고 싶었는데 미처 사기 전에 떠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지금 내 주방에 남아있는 것들은 작은 냄비 하나, 수저 한 세트, 그릇 하나, 작은 도마와 칼이 전부다. 이것만으로도 웬만한 건 다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파스타처럼 조리용구가 두 개 있어야 딱 좋은 음식도, 한 냄비를 가지고 두 차례 사용해야 하니 조금 불편하고 느리긴 하나 그래도 요리는 가능하다.
최소한의 도구를 이용해 뭔가 먹을만한 걸 해 먹다 보니 마치 캠핑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텅 빈 주방에서 냄비 하나만 사용해 라면을 끓여 먹고 있자니 문득 처음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와 지금 떠나기 전 상태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처음.
거의 아무것도 없는 지금.
그 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넘치게 많이 갖고 있던 일주일 전이나, 나는 똑같이 잘 먹고 잘 자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