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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아 Mar 27. 2020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격리시설에서 풀려나 부모님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소독’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손 소독제를 이용해 캐리어 외부를 모두 닦고, 영국을 떠난 후 며칠간 입었던 옷을 모두 세탁기에 넣었다.

여러 나라를 거치며 혹시나 바이러스를 묻혀왔을지도 모르는 오리털 잠바도 드라이클리닝을 위해 쇼핑백에 넣어두었다.


짐을 모두 풀고, 캐리어를 펼쳐놨던 거실 바닥을 소독하고, 샤워까지 마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약 두 시간 정도 지났다.

원래도 약간 결벽증을 달고 살았는데, 때가 때이니만큼 더 오버하게 된다.


앞으로 두 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부모님과도 접촉을 피하기 위해 생활지침을 정했다.

다행히도 부모님 댁에는 욕실이 두 개라서 욕실 하나를 나 혼자 쓰고, 밥은 내가 배고플 때 엄마나 아빠가 쟁반에 담아 방 앞으로 가져다주시기로 했다. 부모님이 모두 은퇴를 하서서 집에 계시니 가능한 일이다.

내가 보균자라면 내가 만지는 물건도 위험하니 내 방과 욕실 외에 다른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아야 하므로, 정말 집안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부모님이 대령해주시는 밥을 먹으며 공주대접을 받고 있다.

습관 되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가끔 거실로 나가 부모님과 대화라도 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나간다. 부모님 연세가 모두 일흔을 넘기셨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대화도 톡을 이용한다. 마치,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인간미가 없어진 미래세상을 그린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다.


집에 온 후 지난 이틀간은 먹고 자고만 반복했다. 한국 도착 전까지 긴 시간 동안 여러 공항을 전전하며 깨어 있던 터라 여독을 푸는데 이틀이 꼬박 걸렸다.

그러고 나니 몸이 가뿐하다.

역시 잠이 보약이다.


엊저녁 일어났더니, 엄마가 닭강정과 참치김밥을 주셨다. 내가 한국에 오면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 목록에 있는 것들이다.

맛있다.

그런데 이렇게 2주가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확찐자’가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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