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놀이란
언젠가 인터넷에서 '산책을 싫어하는 강아지는 없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산책은 강아지의 여러 가지 본능을 충족해준다. 산책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냄새를 접하면서 낯선 곳에 대한 학습을 하고 산책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 동물들, 강아지들을 통해 사회성을 기른다. 강아지가 산책을 싫어한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고 해결책을 찾아줘야 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뭔가를 보면 학교와 연관짓는 습관이 있다. 곧 비슷한 문구가 하나 만들어졌다.
'놀기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10년 가까이 학교에서 살면서 "싫어요", "안할래요"를 수도 없이 듣는다(오늘도 100번은 들었다). 하지만 보통의 상황에서 놀고 오라고 할때 부정의 대답이 나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손놀이나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놀이터나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기도 한다. 가끔은 자기들만의 놀이를 새롭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겉으로 "저는 노는거 별로 안좋아하는데요"라고 새침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한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본인만의 놀거리가 있다.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상상을 하면서 놀기도 하고, 짝과 글을 쓰거나 뭔가를 만들기도 한다. '여러 친구와 함께'가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놀 수 있다.
거창한 환경이 필요하지도 않다. 교실 뒤에 남는 의자 한 개만 있어도 규칙이 생기고 놀이가 만들어진다. 어른들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기들끼리 뚝딱뚝딱 잘 노는 모습을 보면 놀이는 아이들의 본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끔은 아이들이 놀기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놀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한다. 본능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본능이라 이야기할 만큼 아이들의 놀이는 자연스럽지만 생각보다 배움과 성장에 많은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면서 규칙, 역할을 만든다. 그리고 놀이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배운다. 술래잡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술래잡기의 규칙은 술래에게 잡히면 잡힌 사람이 술래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놀이의 역할을 익히지 못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다. 술래에게 잡혔다고 해서 인정하지 않고 술래를 하지 않겠다고 우기면 역시 함께하기 어렵다.
규칙을 지키기로 하고 놀이에 참여한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문제가 발생한다. 몸이 약하거나 달리기가 느려서 술래를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는 도망가는 재미를 누리지 못한다. 도망가는 아이도 스릴이 떨어지니 놀이가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한다. 그럴때 누군가 "잠깐 타임"을 외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술래를 2분이상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술래를 하자는 규칙을 만들거나 친구를 위해 일부러 잡히고 술래가 되는 아이들이 생긴다. 여러 방식의 고민가 대화가 오간다.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는 대화, 조율의 과정이 한번의 놀이 안에서 여러 번 일어난다.
놀이가 계속된다. 술래인 아이가 도망가는 아이를 쫓아가 잡는다. 술래는 본인의 손에 친구의 옷자락이 닿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도망가던 아이는 도망가는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손이 닿는 느낌을 못받았다. 술래잡기는 심판도, 비디오판독 시스템도 없기에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친구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갈등이 생긴다. 두 아이가 씩씩거리며 교사를 찾아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한 친구가 의견을 굽히거나 집단지성을 모아 다음에 술래인 친구가 도망자가 되었을때 한 번 잡히면 봐주기로 하거나 가위바위보로 여부를 정한다.
어른들의 눈에서 아이들은 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매일 쉬는시간마다 몇 년동안 놀이의 경험이 쌓이면 무시못할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많은 놀이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돌아보면 나도 어릴때는 많이 놀았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고, 학교가 끝나면 운동장 놀이터로 갔다. 학원에 가거나 학습지를 하기는 했지만 잠깐 다녀와서 놀이터로 나가면 친구들이 늘 있었다. 방학때는 아침에 나가서 동네 형들과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저녁까지 놀다 오기도 했다. 지금의 내가 있는데 자양분이 된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하루에는 노는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물론 놀거리가 지금처럼 풍부하지 않아서 과거 아이들이 나가서 많이 놀기도 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교 후 학원에 간다. 학원 일정이 끝나면 저녁시간이다.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학원에서 오후시간 전부를 보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직장이 있고 일이 있기에 누군가 아이를 봐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뺑뺑이'를 돌린다. 아이들의 놀이시간은 학교 쉬는시간, 점심시간으로 제한된다.
부모님들이 아이 돌봄을 위해 일찍 퇴근하고 아이들은 놀이터로 가서 놀이의 시간을 가지는 사회의 모습을 바란다. 하지만 일개 교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얽혀있는 것도 많고 얽힌 정도도 심하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쌀알만큼 가지고 있는 나름의 '교사 재량'으로 아이들의 놀이시간을 만들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선,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쉬는시간, 점심시간은 최대한 보장해준다. 왠만해서는 쉬는시간에 나머지공부를 시키지 않는다(그 대신 수업시간에 폭풍 잔소리를 한다). 수업에 놀이를 접목시키기도 한다. 배울 내용을 놀이의 한 요소나 규칙으로 넣어 놀이를 하는데 놀이를 몇 회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은 은연중에 배울 내용을 체득하게 된다. 놀이가 끝나고 이를 개념화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많은 선생님들이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공부가 아닌 친교, 놀이가 목적이 되는 교실놀이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놀이 안에서 갈등도 겪어보고 고민도 해보고 도전, 실패도 겪으면 조금이나마 크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발버둥이다.
오늘도 우리반 아이들은 놀러 밖으로 뛰어나간다. 아침에 학교에 오면서도, 친구들을 만나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엔 놀 생각 뿐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을때 가장 기분 좋은 말 중 하나는 "재미있게 놀고 와"였다. 매일 뭘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안나지만 이 말을 귀 뒤로 흘리며 어딘가로 달려갈 때의 설레임과 신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는 이 기분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등 뒤로 외친다 "재미있게 놀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