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더 이상 출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일을 하려면 문서 작성을 해야했는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떤 단어를 써야 할 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공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시간은 멈춰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빈 껍데기일 뿐이었다.
눈동자 속이 텅하니 비어 있었다.
초점이 희미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진료를 받던 병원에서 진단서를 줬다.
나는 심각한 공황장애로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를 걱정하는 가족의 모습을 마주해야했다.
아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도 무얼해야할 지 몰랐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나는 나의 8살을 기억한다.
여름이 되면 방학 때마다 친척집에 놀러갔다.
밤에 경운기를 타고 갯벌에 갔다.
횃불을 켜고 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조개를 캤다.
점점 물이 갯벌을 덮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경운기에 올라탔다.
경운기에 한가득 실은 조개를 바닷물에 깨끗이 씼었다.
집으로 갖고 와서 큰 솥에 넣어 팔팔 끓였다.
마당에 있는 평상 위에 앉아 다 같이 모여 앉아 조개를 먹었다.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없었다.
나의 8살과 너의 8살이 너무나 달라 마음이 아팠다.
우리 가족은 주말에 바다에 가기로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기로 했다며 안 가면 안되냐고 묻는다.
더 크면 엄마, 아빠랑 안 다닐테니 지금이라도 가야한다며 아이를 설득시켰다.
바다로 가는 길에 햇살이 따사롭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그저 평화롭다.
바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타오르는 햇빛이 너무나도 찬란했다.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이는 바닥에 앉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아주 작은 소라껍데기였다.
손으로 살살 털고 입으로 후~ 불어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는 추억을 담았다.
감사하다.
참 감사하다.
너에게 추억을 담아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