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처음 접한 것은 이십 년 전쯤이었다.
2000년대 초반, 서구의 유행이 수입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명상과 요가에 관한 책이 다수 출간되기 시작했다. 우연히 명상에 관한 책을 한 권 손에 들게 되었는데, 명상을 하면 지복의 평안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는 호기심이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명상도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명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서, 명상을 한다고 하면 특정 종교에 빠졌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일쑤였다. 나는 그 오해가 싫어서 명상의 뇌과학적 효과를 들이대며 명상전도사를 자처하곤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더니, 어느 때부턴가 사회적‧종교적 배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명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고등학생들도 명상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금 나는 또 반대편에 서 있다. 현재 나는 명상을 하지 않는 데다, 명상을 말리는 입장이 되었다. 사실 지금도 이 글을 보고, 명상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생길까 봐 매우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다시 명상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기왕 사람들이 명상에 관심이 있다면, 그 위험과 부작용을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제품을 사면 제품 설명서가 따라온다. 설명서에는 제품의 기능과 사용법 뿐 아니라 위험과 부작용도 적혀 있다. 하지만 명상을 권하는 책은 대체로 긍정적인 면만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명상 중에 나타나는 변화와 변화의 원리를 조금 더 깊이 다룰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알면 위험과 부작용을 피해 원하는 효과만을 얻는 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지금 나는 다시 명상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명상이나 요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차크라(Chakra)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용어는 다르지만, 우리도 예전부터 경혈(經穴)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 개념이 낯설지 않다. 심지어 사우나에만 가도 '경락 마사지'라는 문구와 만나게 된다(경혈과 경락의 차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AI가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다).
사실 문화마다 각기 다른 명상 방식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명상의 전형이나 기원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인도식 명상이니, 여기서도 일단은 인도 철학의 용어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자.
대체로 고대 인도인들은 생명이 '영혼(푸루샤)'과 '물질(프라크리티)'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영혼은 물질과 다르지만 그 또한 실재하는 무엇으로 여겨졌는데, 이 두 부분이 '차크라'라 불리는 일종의 문(門)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다. 즉, 육체와 영혼이 쉼 없이 에너지를 교류함으로써 생명이 유지되는데, 그 중심이 되는 에너지 센터가 바로 차크라(Chakra)라는 설명이다. 차크라가 산스크리트어로 '바퀴' 또는 '회전'을 뜻하고, 에너지가 회전하는 모습으로 상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활력의 원천이 되는 이 에너지 소통의 문이 어린 시절에는 열려 있다가 어른이 되면서 닫힌다. 고대의 인도 구루들은 우리가 본래 발휘할 수 있었던 다양한 영적‧신체적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이유가 이 막힌 차크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크라를 열 수 있는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기법을 계발해 제자들에게 전수했는데 그것이 인도의 요가 전통이다. 그러니까 명상과 요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닫힌 차크라를 열어서 우리가 잃은 육체적‧영적 잠재력을 회복하는 데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도뿐 아니라 고대에는 일반적인 것이어서, 우리의 선도(仙道) 전통에도 비슷한 생각이 남아 있다. 경혈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일종의 에너지 센터라서 경혈의 소통이 원활해지면 육체의 건강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신통력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도가(道家) 내에 신선이 되는 양생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다만 인도에서 차크라라 부른 에너지 센터를 도가에서는 단전(丹田)이나 경혈이라 불렀을 뿐이다.
그런데 명상을 하여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갖가지 잠재력까지 꽃피울 수 있다면 적극 권장할 일인 듯하다. 그런데 왜 나는 명상을 권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말리기까지 할까. 이를 전하기 위해서는 존재에 관한 조금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