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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Sep 22. 2020

누구도 내 보드에 대신 올라탈 수 없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도전 골든벨, KBS 간판 아나운서, 퇴사, 스페인, 자유, 인생학교...

90년대 후반은 지금처럼 유명 여자 아나운서가 많지도 않았고, 퇴사 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던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여자 아나운서 뿐 아니라 여성들이 어렵게 취업을 했음에도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 때는 그게 보통의 삶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 둘 다 모두 해당하던 게 손미나 前아나운서입니다. KBS를 대표하는 유명 여자 아나운서였으며, 회사를 그만두고 결혼을 한 게 아니라 당시만 해도 알려지지 않았던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녀가 기분파에 자유롭게 선택을 미루지 않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그녀의 책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를 읽고 그녀가 사실은 모든 것을 엄청나게 계획한 후에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내 별명 중 하나는 ‘계획녀’였다. 모든 일을 계획 하고 실행에 옮기는 습관 때문이었다. 당시 나의 ‘계획벽’은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 습관은 계속됐다. 일을 시작하기 전엔 반드시 밑그림을 그리듯 계획을 수립하고, 그렇게 못 할 경우 일의 효율이 떨어질까 조바심을 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내 이미지를 떠올리며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과감히 도전하는 사람’,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는 여행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니까. 많은 사람이 나를 자유의 상징이라도 되는 것 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가까운 친구들은 알고 있다. 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엄격한 사람인지를. ‘자유로운 영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단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

나와 내 삶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만큼 열심히 사는 것 이 정도라고 믿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일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는 과정은 너무나 아팠다. 악착을 떨며 노력하는 나도 나이고, 때때로 나태해지고 싶은 나도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상상외로 어려웠다. 그러나 서서히 조금씩 나 자신을 느슨하게 놓아주는 연습을 하자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건지 마침내 알게 되었고,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7p





대중이 갖고 있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손미나 작가를 좋아하는 팬도 많지만 반대로 이유없이 손미나 작가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미나 작가가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용감하게 떠나는 모습이 저는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나에 대한 기대치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걸 저어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의 기대치 안은 마치 안전범위 같습니다.

네가 이 안에만 있다면 나는 앞으로도 너를 응원하고, 너를 인정하고 사랑해줄거야. 


반대로 말하면, 내 기대치를 벗어난다면 나는 너를 싫어하고 너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 거야.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떠나는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쳐 허핑턴포스트 편집장,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손미나앤컴퍼니 대표 등으로 성공한 여성상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사실은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그 정반대였을 테니까요.




책 속에는 손미나 작가가 서핑을 배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저는 그녀에게 서핑을 가르쳐준 선생님의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아침 해가 등을 따갑게 때리는 시각, 내 생애 첫 서핑 수업이 시작됐다. 뻬드로는 모래 위에 서핑보드를 그렸고, 우리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의 열띤 이론 수업을 들었다.


“내가 가르쳐줄 것은 더 이상 없어요. 지금까지 설명한 파도와 바람의 상관관계, 기본 안전수칙, 균형 잡기의 원리까지가 강사가 알려줄 내용이고 나머지는 본인이 직접 체득해야 하는 거죠.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나요? 선생이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넣어줄 수는 없잖아요. 서핑도 똑같아요. 내 역할은 끝났어요. 보드 위에 올라가 파도를 느끼고 바다와 호흡하는 법을 온몸으로 배우는 건 이제 본인들이 할 수밖에요. 자, 바다로 들어가볼까요?”


그의 말이 맞다. 인생은 결국 자기가 살아내야 하는 것.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란 말도 있듯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전과는 별개다. 아무리 많은 걸 배우고 안다 한들 직접 겪어내지 않으면 무의미하고, 좋은 스승과 부모가 있어도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또 모든 파도가 다르기에 보드에 올라타야 하는 타이밍과 자세도 매번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오로지 서퍼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물론 그 판단에 따른 결과와 책임도 모두 서퍼의 몫이다.


-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112p




인생 역시 서핑과 같아서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실전과는 별개며 모든 파도가 다른 것처럼 각자의 인생이 다 다른 것 아닐까요. 그렇기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대신 판단해줄 수도 없습니다. 온전히 내 인생을 파도에 몸을 맡기듯이 뛰어들어서 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모래사장에서 아무리 다른 서퍼들이 서핑하는 걸 많이 본다고 해서 서핑을 잘 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https://bit.ly/361hg1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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