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
"아 진짜 회사 그만두고 싶어!"
"내일 출근하기 싫어"
"퇴사하고 싶다."
우리가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는 이야기. 해도해도 끝이 없는 도돌이표처럼 자꾸 터져나오는 퇴사에 대한 욕구.
마음 속으로는 부장님 얼굴에 사표를 10번 던졌고, 이직을 3번쯤 했고 이민도 한 번쯤은 갔지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퇴사.
그런데
어떻게 퇴사를 하게 됐는지, 퇴사를 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퇴사자의 이야기는 많은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퇴사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왜 찾아보기 힘든 걸까요. 분명 회사 그만둔 사람보다 회사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은데 말이죠.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상황이 괜찮냐고. 집에 가서 오늘 있던 일들을 곱씹지 않고 괴로움에 몸부림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당신을 쓰레기 보듯 쳐다보던 팀장의 표정을 보지 못 했냐고. 서로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겉으로는 웃는 표정을, 속으로는 욕하는 것을 알아도 왜 상처받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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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 14p
회사에 있으면 너무 화가 나서 , 인정받지 못해서, 우울해서,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등,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고 하루에도 그 이유가 2~3개씩 추가되곤 하는데요.
여기 "불안 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걱정이란 걱정은 모두 껴안던 '한 대리'가 불안 장애를 진단받기까지의 일상, 그 후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차츰 '나'라는 사람을 내가 이해해주기에 이르기까지를 담담하게 기록한 책인데요.
이 책의 특징은 직장인이라면 디폴트로 가지고 있을 법한 분노가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마지막 장에 실린 친구와 남편 분의 인터뷰를 보면 오히려 회사에서 당당하고, 일처리도 빠르고, 동료들과 사이도 좋아서 불안 장애를 겪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생각해 보니 오후 회의가 있는데 회의실 예약을 깜빡한 것 같다. 어제 해야 할 업무 리스트에 왜 적지 않았을까? 난 정말 멍청이인가. 나 때문에 회의를 못 하면 어떡하지? 다른 부서의 임원도 참석한다고 했는데 그분은 우리 부서 사람들이 다 나처럼 덜 렁댄다고 생각할 것이며, 팀장은 이 일로 나를 조금 덜 신뢰할 것이다.
체증이 심한 강남대로가 더 갑갑하게 느껴지고, 느려 터진 이 버스에서 내려 회사까지 뛰어가고 싶다. 거기다 난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다. 내리는 문까지 가려면 족히 열댓 명의 몸과 부딪혀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그들에게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으니까. 버스에서 내리기 10분 전에 계획을 세워 문 앞까지 조금씩 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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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 18p
직장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살까 봐 늘 웃었고, 혹시라도 무능력해 보일까 봐 주어진 일을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끝냈다. 그렇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일하는 꿈을 꿨다. 어쩔 땐 회사에서 깜빡했던 사소한 업무가 꿈에 나타나 잠에서 깨기도 했다. 침대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던 날도 있었다. 바쁠 때는 꿈에 회사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기쁘기까지 했다. 나는 집에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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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 20p
겉으론 멀쩡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오늘도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를 사축이라 부르는 우리.
내 것 같지 않고 삐걱대는 관절만큼 우리는 불안, 두려움, 걱정으로 가득찬 스스로의 마음도 남의 것처럼 치부하면서 회사에 다니고 있지는 않나요.
도저히 오늘은 회사에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회사에서 지금 당장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누구나 모든 일을 다 잘하고 싶지만 때론 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단점보다는 장점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요.
오늘도 퇴사 대신 출근을 선택한 직장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두려움 대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조금의 대범함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