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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Oct 29. 2020

늙은 엄마라도,
아픈 엄마라도 좋으니까.

밤에 읽는 책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 줄래?』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 줄래?> 중에서



엄마를 처음 이해했던 순간을 기억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스무 살 엄마가 아팠을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는 우리에게 엄마의 아픈 소리가 들릴까 새벽에 소파에 나와 겨우 몸을 눕던 엄마.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아픈 소리를 우연히 들은 날,

저는 처음으로 엄마도 연약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엄마는 아픈 시절을 잘 이겨내셨고,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지내시지만,

스물 그때 그 시절, 엄마의 아픈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죠.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엄마, 그냥 아프지만 말았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으니 엄마, 엄마의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는 나의 온 우주였던, 내 삶의 버팀목이었던 엄마가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때로는 나의 슈퍼맨이었고, 때로는 나의 선생님이자 친구였으며, 때로는 나의 구원자였던 엄마가 - 건강하지 못한 날이 올 때, 그래서 엄마도 힘들고 어쩌면 나도 힘들어졌을 때 나는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상황일까요?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엄마가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다니!" 말하게 될까요? 내 삶의 기둥이었던 엄마가 돌봐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순간,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는 갑작스럽게 할머니, 그것도 아픈 할머니가 된 엄마를 돌보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건강했을 때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삶의 기둥과도 같았던 엄마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돌봐야 하는 아기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순간 느끼게 되는 수만 가지 감정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삼 남매는 병원, 보험, 요양원을 두루 거치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엄마는 "꾸물대는 늙은이들만 있는 곳"이라며 요양원을 싫어했다. 자기도 늙었으면서......,

그러나 엄마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게 낫다는 거지?"라는 갑작스러운 이해심을 발휘하며 암, 요양원, 그리고 "늙고 병든 할머니"로 맞이하게 된 모든 순간들을 특유의 터프함과 뻔뻔함으로 이겨냈다. 

엄마는 다시 건강해졌다.
하지만 이 여정이 엄마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 중에서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줄래?>에는 80세 생일 이후 갑자기 가사도 힘겨워지고, 시력도 떨어지고, 일어서는 것도 힘겨워지는 등 혼자 지내기 힘들 정도로 급격히 쇠약해지기 시작한 엄마가 등장합니다. 외출도 힘들어 거의 대부분 집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자식들에게 전화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날도 많아지고..


엄마는 늙고, 기력도 없는데 암까지 걸리고, 삼 남매는 갑자기 닥친 절망적인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간병인, 요양원 등 온갖 방법을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병원은 싫다, 요양원도 싫다"라며 고집을 부리는 엄마 때문에 진이 빠지기도 하고, 엄마를 돌보는 일에 점점 지쳐가기도 합니다.


겨우 설득해 요양원에 모시고 나니 이제 자식들은 어쩔 수 없이 돈 걱정에 부딪힙니다. 그럼에도 1등급 판정을 받아 계속해서 요양원에 있을 수 있기를 바라는 자식들. 


엄마가 건강했으면 좋겠지만,

건강해져서 요양원을 나오게 되면 그것 또한 걱정이라

모순된 고민에 빠지기도 하는 모든 모습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걱정하면서도 답답하고 쓰린 마음은 무엇일까.

그러니까 삶이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하곤 합니다.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걸까요?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빛나는 어떤 부분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제야 어른이 되는 걸까요?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언젠가 그렇겠지 하며 무섭고 두려워 외면해왔던 부모님의 늙음을 책을 읽으며 상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짜증 나고 지칠 때도 있지만 엄마가 늙었을 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는 이 책의 고백처럼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고백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아직 저는 멀게만 느껴지는 일들이란 생각 때문에 엄마가 아프다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저릿합니다.


늙은 엄마라도, 아픈 엄마라도, 고집불통 엄마라도 좋으니까..

<엄마, 조금만 천천히 늙어 줄래?> 고백하고 싶은 밤입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고 말해볼까 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합니다.라고요.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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