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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책이름 Dec 11. 2020

안간힘을 써서 매달려봤자 우리는 언젠간 떨어지고 만다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몇 해 전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김자인 선수의 클라이밍 세계 선수권 대회를 본 적이 있습니다.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영상으로 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는데요. 그 전까지 저는 막연하게 클라이밍이란 잘 매달리고, 높이 올라가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김자인 선수가 멀리 떨어져 있는 홀드를 쥐기 위해 힘껏 팔과 다리를 뻗어 도약하는 걸 본 순간, 아 클라이밍은 단순히 매달리고 높이 올라가는 운동이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라는 책은 클라이밍을 다룬 실용서가 아닌, 국내 최초 클라이밍에 대한 경험을 다룬 첫 에세이인데요. 예전에 비하면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실내 암벽장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운동이죠. 아마 이런 책이 있는 줄도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듯 합니다.


그리고 아마 저처럼 클라이밍에 대해 잘못 알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클라이밍은 매달리기보다는 길을 찾아가는 운동에 가깝습니다. 마치 바둑이나 체스를 두듯이 다음 손과 발이 갈 방향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때로는 좁은 간격을, 때로는 있는 힘껏 손발을 뻗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클라이밍을 하는 동안은 자신의 신체와 두뇌를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합니다.


때로는 밖에서 남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이 직접 할 때보다 훨씬 더 두렵고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막상 내가 하고 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삶에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이 그렇듯이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다. 볼더링이나 리드 클라이밍이나 일단 한번 매달려보면 하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덜 무섭고 오히려 할 만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
생각이 너무 많아서 혹은 두려움이 지나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면 멀리만 내다볼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려보자.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를 눈앞으로 한정해보는 것이다.

막상 오르고 나면 생각보다 높지 않은 암장의 벽처럼 지금 내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 역시 문을 열듯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생각보다 별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 일단은 부딪쳐보자. 무엇이든 시작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도전을 가로막는 것은 문제의 난이도나 높이가 아닌 나의 시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_『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p.57에서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서 매달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써서 매달려봤자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 언젠가는 떨어지고 말겠죠. 매달리는 데 안간힘을 써서 떨어진 후에는 한동안 다시 시작할 엄두도 못 낼 테구요.


돌아보면 그 다음을 향해 손을 뻗고 발을 뻗는 게 두려워서 끙끙거리며 매달리기만 했던 날들이 왜 이렇게 많았을까요. 매달리고 떨어지고 또 같은 자리에서 매달리고 떨어지고. 무서운 건 그렇게 하다보면 점점 도착점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출발점에 더 가까워진다는 거예요.




매달려 있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지금 눈 앞에 있는 바로 그 문제에 집중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어려워 보이는 문제도 두려워 보이는 문제도 사실은 하나씩 한 걸음씩 나아가다보면 사실은 별 게 아니더라구요.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나는 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왜 나는 항상 이렇게 우울하지?’하는 고민들이 클라이밍을 한다고 해서 당장 마법처럼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든 문제가 그렇게 해결된다면 모든 세상 사람들이 벽에 붙어서 일단 매달리고 볼 것이다.

클라이밍을 하기 때문에 더는 내 인생의 불행이 나의 삶을 잠식할 수 없다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클라이밍을 한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슈퍼 히어로처럼 ‘용감하고 행복한 나’로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일상은 대체로 고요하며 우울은 여전하다. 클라이밍을 하든 하지 않든, 나는 그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와 끊임없이 몰려오는 어지러운 생각과 매일같이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하지만 클라이밍을 할 때만큼은 그러한 우울의 고리를 잠시나마 끊어버릴 수 있다. 삶이 지루하고 고되다 못해 때로는 지옥같이 느껴질 때, 클라이밍을 통해 짧은 모험을 하며 그 지난한 순간이 계속되지 않도록 잠시나마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이다. 딱딱하게 굳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풀어주는데도 역시 운동만 한 것이 없는 듯하다.

_『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p.16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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