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읽는 책 │ 달에서 아침을
유난히 쓸쓸한 어느 밤, 침대에 앉아 책 한 권을 꺼냅니다.
엊그제 하늘에 뜬 달처럼 밝고 환한 달이 책 표지를 가득 채운 책,
<달에서 아침을>입니다.
<달에서 아침을>은 학급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제를 토끼와 곰의 이야기에 맞추어 다루고 있습니다.
곰과 토끼는 옆집 살고 같은 학교, 같은 반입니다. 지난여름, 토끼가 곰의 동네로 이사 오면서부터 두 아이는 친구가 되었죠. 개학을 하고도 매일 아침 학교를 같이 가고 잘 때까지 문자로 수다 떠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곰은 반 아이들 앞에서는 토끼를 모르는 척합니다. 토끼를 따돌리는 비둘기들과 친하게 지내고, 그들이 토끼를 괴롭히는 상황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합니다.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곰은 토끼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죠.
토끼를 바라보는 곰의 마음도 편하지 않지만, 토끼에게 말을 걸면 아이들이 수군댈까 봐, 비둘기들이 곰도 괴롭힐까 봐 모르는 척합니다.
심지어 토끼에게 이런 폭력적인 말도 합니다.
너는 그게 문제라는 말, 왜 그렇게 다 쌀쌀하냐는 말, 애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말.
토끼가 처한 상황을 토끼의 잘못인 양 이야기하죠.
곰은 토끼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이 모든 상황이 토끼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비겁한 짓임을 모르지 않으면서 말이죠.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비둘기도, 나도, 다른 아이들도
우리는 모두 공범자라는 것을.
가볍게 읽으려고 꺼냈던 책이었는데, 어째 읽으며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 이야기 끝은 어떻게 날까요?
토끼는 그저 왕따인 토끼인 채로,
곰은 그런 토끼를 모르는 척하며 지나갈까요?
어느 날, 곰과 토끼는 누군가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하는 길고양이를 만납니다. 그들은 연약한 길고양이를 때리는 이에 함께 분노하고, 고양이를 보호하고자 마음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끝없이 토끼를 모른척하던 곰은 어느 날, 토끼를 보며 길고양이를 떠올립니다.
어쩌면 길 고양이를 때린 사람은 무시무시한 나쁜 어른이 아니라 바로 나 일 수도 있겠구나. 토끼는 그 어두운 밤 내내 길에 서 아주 오래 외롭고 무서웠겠구나.
책을 읽는 내내 토끼가 마음에 내내 쓰였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moon river> 노래를 좋아했는지, 귀에 이어폰을 내내 끼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는지,
너네가 나를 왕따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너네랑 안 노는 거야! 하는 태도를 가질 수 없었는지. 이상하게 너무 잘 알 것 같았거든요.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전학 간 학교에서 당한 은따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때때로 저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예전의 기억을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괜찮아졌지만, 이상하죠. 어린 시절의 상처는 왜 그렇게 크고 강력할까요.
이젠 그깟 상처 따위 무시할 수 있는 힘과 돈과 시간이 있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유난히 힘든 날엔 철저히 혼자였던 기억에 마음이 반응하곤 합니다
<달에서 아침을>이 더 좋았던 이유는 고통을 겼는 피해자 토끼의 이야기와 방관자 곰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점이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관심과 방관의 영역. 폭력이 폭력인 줄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던 이제는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방관자들에 대한 기억.
학교폭력에서 방관자는 ‘괴롭힘 상황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폭력을 조장할 수도 있고 중단시킬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졌습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서로에게 거울 같아서 누군가의 폭력을 묵인하는 모습을 보며 폭력은 행해져도 된다는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가끔 생각합니다.
제가 교실에서 당했던 그 시절의 일들 앞에서 한 사람이 나서서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줬다면 어쩌면 우리의 삶은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때로 생각해 봅니다.
근데 어른이 되어 살다 보니 그런 날들이 생기더라고요.
나도 어느 곳에선 토끼가 되고, 또 어느 곳에선 곰과 비둘기가 될 법할, 상황들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누군가 토끼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다면
모른 척하지 않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요.
그저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를 건넨 경험이 또 다른 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손 내민 누군가는 그 시절의 또 다른 내가 아닐까- 생각도 해보면서요.
<달에서 아침을>을 읽으며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을 다시 되짚어봅니다.
아픈 누군가를 외면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싸워 지켜줄 수 있는 경험.
그 경험이 서로에게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어줄 수 있는지, 얼마나 따스한 성장이 될 수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고독 속에서 갇혀 있는 많은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소중한 존재인지,
제가 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다정한 이야기처럼, <달에서 아침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다른 누군가에겐 용기로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토끼에게 힘이 되어 주는 곰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달에서 아침을> 이수연 작가님의 인터뷰 ▼
https://www.youtube.com/watch?v=lNrZwWEAD-I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언제든지 이방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밤에 읽는 책
마음이 쓸쓸한 어느 일요일 밤,
침대에 앉아 읽기 좋은 따듯한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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