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비애
이십 대에 같이 공부를 한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친구는 학원 강사로 승승장구를 하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수입이 많이 줄었다며 요즘 좌절감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내게 말했다.
"너나 나나 이십 대에 비해 한 번 꺾였지."
순간 '갑자기 나까지 싸잡아서 왜?'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가 되어 씁쓸했다. 이십 대에 우리는 꽤나 우리의 미래가 근사할 거라 기대했다. 학원 강사로서의 성공을 꿈꾸던 친구는 스무 살 때부터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실력을 쌓아 노력 끝에 대형 학원 강사가 되었다. 우연히 버스에 붙은 친구의 사진을 발견했을 때, 학교에서 내 학생들이 친구의 문제집을 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친구가 매일 일분일초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나는 친구의 성공이 무척이나 기뻤다. 좋은 소식에 함께 자축하고 자랑스러워했다. 친구 역시 비록 진로는 다르지만 학교에서 과대를 하며 성적장학금을 받는 나를 보며 분명 뛰어난 교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바라던 학교에 임용이 되었을 때에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늘 나를 격려해주었다.
그런 우리가 남들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나는 두 아이를 낳으며 총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육아휴직을 했고, 매번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현실 가운데 적당히 교직생활을 해왔다. 1정교사 연수도 미루었고, 벌이고 싶은 일들도 꾹 참으며 열 개 중 한 개씩만 시도했다. 그런 가운데 나이에 비해 경험이 미숙한 평범한 교사로 머무르게 되었다. 친구 또한 아이를 낳은 이후 하루 24시간 일 중심으로 돌아가던 삶을 정리해야만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최소한의 시간들을 만들기 위해 강의를 줄여야 했고, 극한의 경쟁이 존재하는 사교육 시장에서 조금씩 지쳐갔다. 우리가 나태했던 것은 아닌데,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십 대의 꿈에서 우리가 이토록 멀어져 버렸을까.
이미 작년부터 올 초까지 친구와 같은 좌절감, 열등감, 우울감으로 한차례 마음고생을 한 나는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새로운 희망이 생기더라. '그래, 나 아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데 시간이나 에너지나 여러 면에서 제약이 따른다. 전처럼 마음껏 일에만 몰두할 수 없다. 인정한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살까. 전처럼 일을 못한다고 해서 계속 좌절감 속에 살아가야 하나. 아이를 키우는 상황 가운데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일한다. 그 가운데서 어떻게 더 성장해나갈지 생각한다. 아이도 내가 원하는 내 삶의 행복의 조건이었다. 저주가 아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도 챙기면서 일의 기쁨도 내가 누려보겠다. 아이 없는 사람의 성과와 나를 비교하며 살 필요 없다. 그냥 나는 나대로 행복해지겠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우울감에서 벗어나 그다음을 살아갈 힘이 생기더라고. 우리 아직 젊잖아. 앞으로 일할 날이 창창한데 너무 벌써 시무룩하지 말자. 남들은 갈 길 가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우리 길 가자."
사실 이런 대화가 이 친구가 처음은 아니다. 얼마 전 출산한 법조인 친구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 친구 역시 이십 대에 같은 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던 사이였다. 내가 임용 공부를 한다고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공부를 하고 뿌듯해하며 집에 가면, 옆에서 그렇게 해서 무슨 시험에 붙겠냐며 잔소리하던 친구였다. 친구는 아침 6시에 도서관에 도착해서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시험이 붙을 때까지 했다. 친구가 원하던 시험에 합격해서 직장 생활이 천직이라며 만족해할 때 우리는 우리 이십 대의 열심을 보상받는 것 같아 너무나 뿌듯했다. 그런데 나와 같이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으면서 친구 또한 육아휴직을 두 번 했다. 주말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업무환경에 친구도 많이 지친듯했다. 이 일을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언제든 그만둘 마음의 준비를 점점 해나간다고 했다.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하고 열정적인 친구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슬펐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더 그랬다.
물론 살아가는 일은 오르막길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앞으로 더욱 지독한 시련들과 고된 날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이십 대보다 삼십 대에 조금씩 기대를 내려놓고 씁쓸한 현실에 백기를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든다. 나만의 감정일 때는 오히려 잘 몰랐는데 친구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니 더욱 그렇다. 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이토록 꿈을 희생하는 일이 되어야 하는지 짜증이 난다. 당연히 일과 가정의 균형은 필요하지만 우리가 지레 겁먹고 스스로를 이미 '꺾였다'라고 인식하는 게 싫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니까 잠깐 일보다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는 시기 아닐까.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몇십 년이 남았는데 고작 초반 이 몇 년 좀 뒤처진다고 해서 벌써 실패자인 양 주저앉아있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아이를 키우며 얻게 되는 부가적인 역량과 의지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 길이 분명 우리 뒤에 따라오는 누군가에게는 경험이고 희망이 될 것이다. 살아오며 항상 집단에서 앞서 오던 우리가 갑자기 뒤처진다 느꼈을 때 이런 당혹스러움과 좌절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후배들에게 '나도 그랬는데 다 괜찮아지더라. 더 잘 될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는 선배가 될 것이다. 설령 우리가 이십 대에 꿈꾸던 대로 그리 대단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뭐 어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을 매 순간에 진심으로 살아왔는데.
되게 당차게 글을 쓰는 가운데 자꾸만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난 뭐가 그리 서러운 걸까. 아이 없다고 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했을 거라고 이렇게 일을 못해 개탄스러워하나. 그래도 나는 안다. 친구들과 내 삶에 가장 큰 자랑은 각자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서로 아이들 사진을 보여주고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금세 표정이 싱그러워진다. 우리는 최후에 아이를 키우는 행복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느끼는 기쁨을 모두 얻는 승자가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