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 축하해. 잘 지내?

너무 늦은, 영영 늦어버린 생일 축하

by 적정철학

아빠, 안녕?

잘 지내? 오늘이 아빠 생일이네. 축하해!

아빠가 살아 있을 때, 내 목소리를 듣고 내 문자를 읽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축하하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너무, 아니 영영 늦어버렸네.


이제부터 아빠 생일에 아빠를 기억하면서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어.

오늘 그 첫 번째 편지를 쓰려고 해.

아빠에게 내가 몇 번째 편지까지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 편지가, 이 마음이 아빠에게 가닿을 순 있을지도 모르겠네.


실은 이 편지는 아빠를 위한 편지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편지야.

아빠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애도하는 건 이제 엄마랑도 언니랑도 무관한

온전히 내 몫의 숙제가 되었어. 그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어.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복잡하고 오락가락하기도 해.

그래도 아빠하고 나하고의 관계는 이제 우리 둘만의 관계라는 걸 제대로 받아들이고 싶어.


아빠랑 함께한 추억을 많이 떠올리고 싶은데 내 기억력이 매우 나빠서 그런지 잘 안 떠오르네.

우리가 함께 살고 먹고 웃은 시간들이 꽤 긴데도 말이야.

아빠한테 미안했던 일, 아빠한테 잘못한 일들, 못 챙겨준 것만 자꾸 떠올라.

아빠를 더 자주, 기쁘게 떠올리고 싶은데 떠올리면 자꾸만 눈물이 나고 미안해지기만 하네.

아빠, 나는 아빠한테 어떤 딸이었어? 묻고 싶고 듣고 싶은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네.


집을 청소하는 대신에 아빠랑 같이 앉아서 눈을 맞추고 잠깐이라도 대화하고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정성스럽게 차린 따듯한 밥을 나눠 먹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게 너무 아쉬워.

그때는 집을 얼른 깨끗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빠한테는 그것보다

나랑 시간을 보내는 게, 내 목소리를 듣고 아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필요했을 텐데.

못된 딸이, 모자란 바보 딸이 그걸 몰랐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사과를 하고 또 해도 계속 사과할 일이 떠오르겠지.


나는 어렸을 때도 그렇게 좋은 딸, 착한 딸은 아니었던 거 같아. 아빠한테 말이야.

고집도 세고 말도 많고 때때로 아빠한테 나쁜 말, 예의 없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했네. 화가 많이 났지?

우리가 다시 아빠와 딸로 만난다면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때는.

그때는 내가 아빠한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하지 않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따듯한 딸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이제 와서 이런 편지를 구구절절 쓰는 것도 결국 자기변명이고 자기 합리화인 것 같기도 해.

다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러면서도 아빠, 나는 아빠가 그걸 바랄 거라고 생각한다. 웃기지?

왜냐하면 아빠는 나의 아빠니까. 내가 행복하길, 건강하길 바랄 테니까. 나는 아빠의 행복과 건강을 제대로

기원하지도, 지키지도 못했으면서 염치없고 뻔뻔하지? 점점 더 이기적인 딸이 되어 가네. 나는.


아빠, 내가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생각해 보기도 했어.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입이 안 떨어질 거 같아.

내 못되고 못난 마음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빠한테 감히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거 같아.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하기 어렵겠지. 내가 아빠를 더 세심히 보살폈으면 달라졌을까.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아빠랑 문자도 하고 전화도 하고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면서 TV를 보고

같이 웃을 수 있었을까? 날씨가 춥다고, 그래도 이번 겨울은 작년 겨울보다는 따듯하다고,

보일러 값이 많이 올랐다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른 따듯한 봄이 오고 봄바람이 불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나 봐.


아빠. 아빠. 아빠. 보고 싶어. 나, 아빠 보고 싶어 해도 괜찮아?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말이야, 아빠.

나처럼 못되고 철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딸 말고 다정하고 예의 바른 딸을 만났으면 좋겠어.

아니. 결혼하지 말고 혼자 행복하게, 아빠 하고 싶은 거 신나게 하면서 살아도 더 좋겠다.

자전거로 전국 일주도 하고 바둑 대회도 나가고 좋아하는 축구 경기도 실컷 보고 말이야.


올해는 2026년이야. 아빠. 2019년 겨울에 아빠가 떠났으니까

나는 아빠가 곁에 없는 세월을 6년 훌쩍 넘게 살았어. 세월이 휘리릭 지나가 버린 것 같아.

아빠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는데, 쉽지 않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게.

아빠가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고 믿고 열심히, 재밌게 살아볼게.


아빠. 이번 생일 편지는 여기까지만 쓸게. 생일 정말 축하해. 잘 지내. 나도 잘 지낼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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