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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Jan 22. 2019

뉴욕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2013년 8월, 햇병아리는 낯선 뉴욕 땅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내가 처음 뉴욕에 발을 내디딘 것은 5년 전, 대학교 새내기였을 때다. 


2012년 1월,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한국 대학으로의 진로를 포기하고 무작정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선전포고를 하였다. 


교육열이 남다르셨던 부모님은 (=어머니), 맹모삼천지교의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분이셨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유명하다는 학원이란 학원을 헬리콥터 맘들의 정보통을 통해 수소문하셨고,

유명한 과외 선생님을 섭외해 주말마다 붙여주시는 피나는 노력을 어머니는 당연한 모성애이자 희생이라고 생각하셨다. 아마 어머니는 이만큼 하셨으니 내가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인 서울 대학을 가겠지라고 예상하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자식이 미대로 진학하겠다 선언하였으니. 

그 해 초봄의 집안 분위기는 꽃샘추위는 감히 비교도 못할 정도로 싸늘하고 추웠다.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꾸게 된 배경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했다. 

1. 난 남들과 달라, 내 자유로운 영혼이 시키는 대로 하겠어! 

2.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할 거야! 

3. 한국은 너무 비좁아, 난 다른 나라에서 시야를 넓혀볼 거야! 

등등. 

한 마디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무작정 좋아하는 일을 전공으로 삼겠다는 철없는 패기가 큰 이유였다.


3일을 단식 투쟁하며 버티고, 방학 동안 혼자 발품을 팔아 해외 미대 입시학원의 문을 두드리던 중, 

딸과 어머니의 전쟁을 말없이 지켜보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나를 불러 앉히시곤 A4용지와 펜을 내미셨다. 

'네가 가고 싶은 대학들을 여기에 적어보렴.' 

나는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지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 적어서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 대학 이름들을 눈여겨보시더니, 입을 여셨다. 

"그래, 네가 하고자 하는 대로 지원해주마. 하지만 이 학교들 중 단 한 군데라도 합격통지서가 오지 않는다면, 

넌 다시 재수해서 한국에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 

여태껏 살면서 가장 무서운 조건이었다. 


그렇게 나는 등 뒤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쫓아오는 듯한 기분으로, 앞에는 꽃길 일지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을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길을 걷기, 아니 뛰기 시작했다. 또래 고3 친구들이 논술이니, 수행평가에 신경을 쏟을 때, 

나는 매봉역에 있는 한 개인 화실에서 무작정 붓을 들고 캔버스에 페인트질을 하며 대입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그렇게 사계절이 지나갔다. 다시 새해가 되었고, 나는 그 추운 겨울을 내가 지원한 학교들에게서 합격 메일이 날아오길 기다리며 보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다행히도 내가 지원한 대학들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멋모르고 무작정 지원한 대학교들 중에서 합격 통지서와 가장 좋은 조건의 장학금을 제시한 학교는 뉴욕에 있었다. 고민할 것 없이 나는 그 학교를 택했다. 부모님께 학비 전액을 지원해달라 부탁하기엔 내가 봐도 너무 염치가 없었다. 

 

'와, 뉴욕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니!' 

나는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고 그렇게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뉴욕 땅에 내렸다.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한국의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없이 대학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1학년 때는 기숙사에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밤늦도록 뉴욕 시내를 쏘다녔고, 

2학년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공 수업 커리큘럼을 원망하며 과제를 꾸역꾸역 해냈고,

3학년 때는 졸업 전 슬럼프와 저 바깥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에 바스러지는 멘틀을 부여잡느라 애썼고, 

4학년 때는 졸업 작품과 구직 활동으로 전쟁터와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그렇게 내 대학생활은 설렘과 즐거움, 괴로움과 불안함이 가득, 

남은 잔반들을 대충 때려 넣은 비빔밥처럼 뒤섞여 후루룩 폭풍흡입하듯 지나갔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 낯선 외국 사회에 내던져진 검은 오리 새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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