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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를 빛내 Jan 22. 2019

뉴욕 취업 도전기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취업하는 동안 겪은 어려움, 슬럼프를 극복하다.  

얼마 전에 읽은 한 뉴스 기사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 실업자의 수가 약 34만 명에 다다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뉴욕에서 미대를 졸업하고 운 좋게 패션 잡지회사에 입사해 그래픽 디자이너 일을 시작한 햇병아리였던 내게 2-30대의 청년 실업난은 그저 길거리를 걷다가 스치는 좌판대의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느껴졌었다. 청년실업이 머나먼 미국에 살고 있는 내게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 것은 F-1 학생 비자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OPT 기간이 끝나고 몇 달 후였다. 


아침에 갓 내린 따끈따끈한 커피를 들고 출근해 책상에서 그 날의 패션 기사를 읽으며 아침을 희망차게 열었던 내게 어느 날, 1년 차 신입에게는 취업 비자를 지원해 줄 수 없다는 회사 인사팀의 통보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내 20대의 초반을 쏟아부은 뉴욕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무의식으로 내 입에서는 '절대 안 돼!'라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나왔다. 5년 동안 내 체형에 맞게 길들여진 이케아 침대 매트리스를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낯선 침대, 낯선 방에 내 몸을 뉘인다는 생각은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굳혀져 있었다. 낯선 여행지의 호텔에서도 잠 못 자고 뒤척이며 밤새는 내가, 과연 5년 만의 환경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 침대 매트리스는 사소한 핑계일 뿐, 이 곳에서의 내 생활, 내 친구들, 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될까 말까 복불복의 심정으로 신청한 O-1 비자 결과는 턱걸이로 승인되었고, 

남은 건 미국에서 직장을 구해 햇병아리 디자이너의 꿈을 계속 꿀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꿈이었다. 


뉴욕의 가을은 짧고, 겨울은 길고 춥다. 뉴욕의 취업 시장 또한 냉혹하고 뼈가 시리게 아프도록 차가웠다. 


"저희 회사는 취업 비자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귀하는 저희 회사의 디자이너 포지션과 맞지 않아 불합격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비자 문제로 인해 최종 면접 일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개인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5번 갈아엎고, 381통의 입사 지원서를 써 보냈으며, 그중 35곳이 넘는 회사와 셀 수 없는 전화 면접을 했다. 좋은 분위기로 흘러가던 전화 면접은 내가 비자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거절 통보와 함께 끊겼다. 어떤 회사는 최종 면접이 끝나고 구두로 오퍼까지 받았지만 막판에 회사 소속 변호사가 거절 의사를 밝혀 입사가 무산되기도 하였다.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는 나날이었다. 


몇 통의 전화면접이 끝난 하루의 끝은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소모가 커서 운동은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운동 부족은 무기력감으로, 무기력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나날들이었다. 하루는 머리를 감고 나오는데 하수구 배수망에 빠진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의 몸이 슬럼프에 이렇게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깨닫는 시간이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빠진 슬럼프가 다시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신청하고, 갤러리와 박물관 전시회를 보러다니고, 도저히 집에서 혼자 지내기 외로울 때는 남자친구나 이웃 동네 친구를 만나 맥주 한잔을 하며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주변친구들이 나의 징징거림을 들어준 것도 지겨울텐데 묵묵히 듣고 위로해준 것이 가장 큰 힘이 된 것 같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무기력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침대를 벗어나는 것도 때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걸, 슬럼프를 겪으면서 알게되었다. 일단 침대를 벗어나, 옷을 입고 나와 집 앞 카페에 앉아 커피라도 한잔 시켜 마시면서 정신을 가다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처음 며칠은 멍하니 카페에서 멍을 때리다가 어느 날부터 노트와 펜을 챙겨나가 복잡한 생각을 두서없이 써내려가기도 하고, 휙 스쳐지나가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적기도 했다. 혹시나 면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서. 


뉴욕의 취업시장은 아직도 춥고 냉혹하다. 하지만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난 아직 놓지 않았다.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에서 주는 책임감과 번뜩이는 디자인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을 때의 성취감이 얼마나 재밌는지 알기 때문에 나는 그 것을 알아주는 회사가 머지않아 나타날 것임을 믿고 또 기대한다.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내일 있을 면접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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