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병아리 프리랜서 디자이너 (라 쓰고 백수라 읽는다), 뉴욕에서 취업하다
여행을 다녀오면서 리프레시하기
나는 집순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졸업 후 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붙박이 장처럼 뉴욕에 살아보니, 왜 주변 친구들이 바쁜 도심을 떠나 여행을 가는지 새삼 이해가 갔다. 더더욱이 연말에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한 뉴욕을 보니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마침 12월 초에 싼 티켓이 온라인에 떠서 '기회다!' 싶었다. 그래, 이 지긋지긋한 뉴욕을 한번 벗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오랜만에 머리도 식힐 겸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났다.
3박 4일 정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동안 뉴욕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했다. 대학교 3학년 봄 방학 때 잠시 놀러 왔었던 도시라 그렇게 낯설지 않았지만, 3년 사이에 다시 방문한 샌프란시스코는 그대로라면 그대로, 변했다면 많이 변해있었다. 그곳에서 맛집도 찾아가 보고, 아침에 일어나 아침 이슬을 맞으며 조깅도 하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냈다.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오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이틀 째 밤이었다. 긴 일정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지원했던 회사들 중 두 회사에서 연락이 와있었다. 소호에 위치한 한 디자인 에이전시와 미드타운에 위치한 한 스포츠 스타트업 회사였는데, 그곳의 인사팀 매니저가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회사들과 전화면접을 하면서 비자 문제로 거절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나는 비자를 스폰서해 줄 수 있는지 여부를 답신에 적어 보냈다. 그러자 두 회사 모두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어라? 이렇게 외국인이 취업하기가 어려운 시기에 스폰서를 해줄 수 있다고?' 뒤통수가 망치에 맞은 듯 멍해졌다. 그리고 취업을 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쭈글쭈글한 풍선처럼 처져있던 어깨가 다시 펴지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돌아와 그다음 주에 있을 면접을 준비하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포트폴리오 웹사이트를 다시 재정비하고, 예상 질문에 내 생각이 담긴 답변을 준비하면서 노트 정리도 하고.
여기서 잠깐,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면접을 준비하는 자세
수많은 면접을 보면서 쌓인 경험에서 비추어 말하건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좋다.
자주 나오는 예상 질문들
나는 왜 이 포지션에 지원을 하는가?
이 포지션이 요구하는 경력 및 스킬이 내 과거 경력과 스킬과 부합하는지,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와 부합하는 포지션인지 등등을 어필하면 좋다.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되는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의 백그라운드와 장점을 언급하고, 나의 디자인 스타일에 대해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이력서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면서 적절한 예시를 들면 더 설득력 있다.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내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떠한가? 그리고 문제가 닥쳤을 때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는가?
보통 디자이너라면 컴퓨터 혹은 종이에 스케치를 하면서 아이디어 구상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둘 중 정답과 오답은 없다. 나는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과정을 말하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보통 나는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최소 세 가지 아이디어를 준비해 가는데, 옵션이 다양할수록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건설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디렉터에게 선택받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들었던 디자인 콘셉트는 추후에 나의 개인 포트폴리오에 집어넣기 좋다.)
팀 내에서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면 좋다.
나는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것이나 애매한 것에 부딪히면 무조건 질문을 하는 성향이라 커뮤니케이션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일을 할 때 남들과 내가 어떻게 소통을 하고 업무를 보는지에 대해 예시를 들며 답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갈 수록, 내가 이 기회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포트폴리오는 컴퓨터와 프린트 물 두 가지를 챙겨갔다. 물론 면접관이 여러 명일 수 있으니 이력서는 넉넉히 준비해 간다. 디지털 영상작업은 미리 와이파이가 터지는 집에서 재생 후, 일시정지를 해놓고 가져갔다. 컴퓨터만 가져가기에는 면접장의 변수가 많아 불안하기 때문에 하드 커피(프린트된 포트폴리오)도 챙겨간다. 그래픽 디자인 포트폴리오는 면접관이 직접 폰트나 색감 등 디테일한 부분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프린트 물은 필수다.
면접관들도 사람인지라, 그 날 그들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면접의 스타트가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 딱딱한 분위기를 풀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서로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면접을 보러 간 날은 특히나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어서, '오늘 날씨가 유난히 짓궂어서 출근하기 어려우셨겠어요, '라는 코멘트로 대화를 시작하거나, 전 날 보러 갔던 인상 깊었던 전시회 이야기도 준비해 가기도 했다. 물론 사담은 유쾌하지만 짧게, 나는 수다를 떨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면접이니까.
면접은 쌍방향이다.
보통 면접에서 회사가 갑, 지원자가 을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지만, 지원자인 나 또한 이 회사가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적인 여유가 부족한 사회 초년생에게는 무조건 연봉을 더 높게 부르는 회사가 끌리지만, 그 회사의 분위기, 내가 그곳에서 일하면서 성장할 가능성, 그리고 업무의 다양성 또한 무시해서는 안될 요소이다. 지옥 같은 분위기의 회사에서 일하며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는 우울한 생각으로 내 행복과 돈을 맞바꿀 수는 없으니까! 물론 제시하는 연봉이 합리적이면서 내가 일을 많이 배울 수 있는 회사가 제일 이상적이지만,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것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정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제일 후회가 적다.
실제로 면접을 보면서 비자를 스폰서 해주겠다는 회사는 간혹 있었다.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결국 거절의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던 건, 과연 내가 그곳에서 일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니어 디자이너라는 햇병아리 레벨을 때로 인턴처럼 취급하며 디자인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잡일을 시키는 곳이 있기도 하고, 면접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면접관이 (미래의 내 상사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며 무례하게 굴어 '이 곳에서 일하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겠구나' 학을 뗀 곳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뉴욕에서 살면서 직장을 구하는 것에 대한 나의 선택에 대해 회의감도 들고 좌절한 적도 많았다. '이 거대한 미국 땅에서 내 몸 하나 뉘일 곳, 내가 일할 자리 하나 없나?'라는 질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답은 '예스!' 분명 기회는 있다. 그리고 기회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면접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 면접이 끝난 이후, 두 회사 모두 긍정적인 답변이 왔고, 나는 그 중 소호에 있는 디자인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12월 19일, 이른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찾아온 오퍼에 나는 방방 뛰면서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보이스톡을 걸며 희소식을 전했고, 친한 친구에게 엉엉 울면서 드디어 백수 탈출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