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숲을 그려봤다.
오늘은 모처럼 뒷산에 올랐다.
5시 조금 전에 갔는데 그 이유는
이 무렵이 새들이 귀소하기 직전이라 제법 움직이는 새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는 정말 드물었다.
겨우 만난 새가 뒷산 터줏대감 박새, 오목눈이
그리고 직박구리와 까마귀, 까치
거의 다 내려오기 직전에 청딱다구리 두 마리를 만났다.
아파트를 나서는데 벌써 찬 기온이 훅 느껴진다.
겨울 끝자락이 결코 쉽게 물러가진 않겠지...
숲은 정말 조용했다.
간혹 박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텃새들은 이제 짝짓기를 시작할 때인지라
소리가 경쾌하진 않다.
왜 짝을 부르는 소리가 경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보니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인 내 귀에 그리 들리는 거다.
박새들 끼리는 다르겠지.
늘 다르다는 것, 모든 존재는 심지어 인간일지라도 존재는 다 다르다.
우린 다 다른 디폴트값을 지닌채 이 세상에 나왔고
그렇게 다르게 살다간다.
그렇지만 같은 인간끼리는 의사소통이라는 게 있고
공동의 문화가 있고 공통의 지식이 있으니
교집합을 추출할 순 있다.
그럼에도 늘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늘 다니는 길이 아닌 오늘은 샛길로 한번 가봤다.
콩쥐랑 같이 갔는데
엄마 길 알아? 하고 몇 번을 묻는다.
글쎄? 왜?
엄만 길을 잘 모르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래봤자 동네인데..
이러고 가다보니 우리가 잘 다니는 길과 합류 지점이 나온다.
나는 행여 길을 잃는데도
워낙 많이 헤매며 다니는지라 겁이 나진 않는다.
다만 해가 6시를 넘기면 금세 떨어지니 그것만 잘 살피면 될 일이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면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은행나무였는지 느티나무였는지 모르겠다....
무튼 그 나무 우듬지에 까치집이 하나 있는데
작년에 그 까치집에서 태어난 새끼 까치 한 마리가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둥지에서 나와 둥지 위에 올라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을 봤다.
안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복잡한 마음으로 한참을 지켜봤는데도
결국 내가 그곳을 뜰 때가지 새끼는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아직 날개짓이 무척 서투른 그래서 이소를 하기에도 이른 녀석인 듯 했는데
어쩌자고...
만약 어미가 인간이었다면 어떤 소리를 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그 상상을 하니 우습고
그런데 비바람이 제법 거세게 몰아치니 새끼가 행여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 하기도 했고..
그런데 그 나무는 워낙 큰데가 까치집은 그 나무의 꼭대기..
결국 자기 팔자대로 무사히 내려왔을 거라 믿으며 발길을 돌렸다.
오늘 보니 그 까치집 아래로 집이 한 채 새로 생겼다.
작년에 태어난 까치일까, 아니면...?
낡은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지은 걸까?
궁금증이 일긴 했지만 답은 끝내 알 길이 없다
위쪽 집 까치와 사이가 나빠보이지 않는다면 혹시 모를 일이겠으나
그 둥지를 보다 작년 일이 떠올랐다.
잎눈 꽃눈, 아직은 주먹쥐고 있지만
이제 슬슬 펴기 시작하면 활짝활짝 펼치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애벌레들이 꼬물거리며 기어나올 테지.
따스한 볕 받고 온화한 바람 쐬고
촉촉한 봄비 맞으며 마른 나뭇가지에 물 오르는 어느 날
아주 조금씩 삐죽빼죽 움이 틀 것이다.
이런 상상을 아직은 겨울인 숲을 걸으며 했다.
어디쯤 왔을까 갑자기 숲이 확 넓어지더니 지는 해가 볕을 숲 바닥까지 뿌리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그러니까 해가 지기 직전 잔광을 흩뿌리는 바로 그 시간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때다.
마침 새소리도 어디선가 들려 그곳에서 한 십 여분 귀를 기울이다
숲 바닥에 내려앉은 볕그림자 살피다
오롯이 그 장소와 시간과 소리풍경을 즐기다 내려왔다.
나는 산에 갈 때마다 어떤 절대자에게
이 산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의 평화를 기도한다.
이 산과 그 둘레 너머로 있을 뭇 생명들이 오래오래 평화롭기를 기도한다.
그 기도는 결국 나를 위한 기도이고 내 가족 내 지인
확장해 나가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일 테다.
202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