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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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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03. 2022

요안나 콘세이요



요안나 콘세이요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가 그림에 꽂혀 알게 된 작가다.

그의 책이 내게 두 권 있다.

남편 라파엘 콘세이요와 함께 작업한

'아무에게도 말하지마'와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


그의 그림은 따스하다.

생명이 깃들어있다.

지나온 시간, 물건을 되돌려 소중히 기억한다.

작은 것들이.지닌 의미와 가치를 담는다.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에는

그림을 절대 넘어서지 않은 글이

그림을 잘 살려주는 글이 담겨있다.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훨 많다.

그림 너머에 글이 조금씩 양념처럼 박혀 있다.

그렇지만 그 글은 힘이 있다.


이 그림은 '까치밥나무 열매가 익을 때'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표지에 앙리와 고양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있는데

고양이 얼굴을 들여다보면 쌔근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고양이를 한번도 만져본 적 없고

못 만진다.

털 있는 짐승을 나는 두려워한다...

마음은 그들과 무척 가까이 있지만, 언제나

비록 내 몸이 그들과 거리를 좁힐 수 없다해도

그림으로는 충분히 쓰다듬어줄 수 있다.


앙리는 매일 큰길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큰 길가에 늘어선 늙은 떡갈나무들이 멀리서도 보였다.

드문드문 서 있는 동네 우편함들 위로

떡갈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랫동안 앙리는 편지 한 통을 기다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의 우편함은 침묵만을 품고 있었다.

때때로 전기 고지서나 가스 고지서,

광고 전단들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앙리는 진짜 편지를 기다렸다.


이런 글들이 그림 사이로 조금씩 채워져있는 이 책이 갑자기 생각났던 건

오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야생동식물의 날,

오늘 그림일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찾느라 이 책이 문득 생각났고

그래서 다시 뒤적이며 읽었다.

이 그림의 앞 장면도 있고 뒷 장면도 있다.

그 어느 중간쯤에 이 그림이 있다


모레가 경칩,

개구리가 꺠어나고 짝짓기를 하고 부화한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어

살던 곳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앙리처럼 오솔길을 산책하는 곳에선 로드킬이 벌어지지 않겠지..

천천히 걷는 그 길에는


개구리가 꺠어나는 이즈음부터 5월까지 무수히도 많은 도로에서 로드킬이 벌어진다...

새들은 또 얼마나 많이 유리벽에 충돌하며 사라지고 있는지


도시를 채운 인공물로 자연은 너무 많이 사라졌다.

생명도 더불어 많이 삭제됐다.

그러니  우리가 그들과 생명의 그물망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

거의 인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오래 전 그들이 살던 이 터전에 대한 상상

우리들의 출현으로 점점 떼밀려간 그들에 대한 상상

끊어진 생명의 그물망을 다시 잇는 상상


그러니 어느 곳에선가 겨우 목숨붙이고 살아가는 그들을 이제는 정말 살피고 지켜줘야하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그들의 터전을 그들의 삶을 더는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일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세계 야생동식물의 날을 맞아

오솔길을 산책하는 앙리를 떠올렸다.

천천히 걸으면서 만나는 생명 하나하나와 눈맞추고

마음으로 인사나눌 수 있는 세상

그게 바로 평화 아닐까?


20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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