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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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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26. 2022

둥지 짓느라 바쁜 까치


*레몬트리 화분이 하나 집에 있는데

언젠가부터 초파리가 집안을 자꾸 날아다녀

그 진원지를 찾다가 레몬 화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왜 그곳에 초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언니네에서 분양받은 건데

언니 말로는 화분을 바깥에 좀 내놓았는데 아마 그때 초파리가 생기기 시작한 게 아닐까

그것도 그저 추측일 뿐


집안에 더는 둘 수가 없고 그렇다고 바깥에 두면 나무가 완전히 얼어버릴 것 같아서

현관문 밖 엘리베이터 옆에 두었다.

사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딱히 생각이 떠오른 건 아닌데

그저 초파리들이 좀 사라져주기만을 바라면서

그러고는 그 존재를 자주 까먹곤 했다.

외출하는 날이면 아차, 하며 물을 한번씩 줄 따름

볕도 들지 않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건너편 창을 통해 바깥을 보았을까?

보이는 거라곤 앞동 아파트인데

계단을 쳐다보았을까?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말고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텐데

이따금 앞집과 우리 집을 드나드는 식구들을 만났을 텐데

누구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알았다고 한들 뭐라 한 마디 말을 거는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어제 약속이 있어 나가면서 화분에 물을 주고는

곧장 약속이 취소되어 다시 걸어 올라오다가

화분이 눈에 띄었다.

화분 물받이로 물이 찰랑거려서

그걸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는데

보니까 지렁이 한 마리가 그 안에 있는 거라.

제법 굵고 큰 지렁이

우리집 화분에는 지렁이가 꽤 산다.

집에 있는 지렁이 사육상자에 분변토가 좀 많다싶으면

흙을 덜어 화분에 놔주니까.

흙속에 있던 지렁이 알이 옮겨가는지

흙속에 있던 지렁이가 함께 옮겨간 건지

무튼 지렁이들이 꽤 있다.

바깥으로 나오진 않는데 가끔 물받이로 미끄러져 내려올 때가 있다.

그럼 다시 넣어주면 된다.

그렇지만 레몬트리 화분에는 흙을 덜어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언니 말처럼 바깥에다 놓아둔 시간의 어느 날

지렁이가 화분 속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얼른 지렁이를 지렁이 사육상자에 넣어줬다.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지렁이와 사이좋게 잘 지내라고 덕담(?) 한 마디도 해주며


약속이 취소되었으니

물받이를 재빨리 비워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지렁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초파리도 이제 거의 다 사라진 것 같은데

그렇다고 그 화분을 집안으로 들이려니...


일단 따뜻한 봄날이 되면 아예 아파트 화단으로 옮겨줄까 싶기도 하고...

일단 고민을 좀 더 해봐야겠다.


**

오늘 콩쥐랑 화분을 사러 동네 마트에 다녀왔다.

쌍안경을 우리는 하나씩 목에 걸고 길을 걸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이 좀 넘게 걸리는 곳이라

가면서 새소리를 들으며 쳐다보며 이렇게 한눈을 팔며 갔다.

걷다가 올려다본 나무에서

까치는 나뭇가지를 고르고 있었다.

두 마리가 보였는데

힌 냐삭은 둥지 안에서 둥지를 손보는 것 같았고

한 녀석은 나뭇가지를 고르더니만

갑자기 뚝! 소리가 난다.

부리로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꺾은 소리였다.

얼마나 소리가 컸는지 콩쥐랑 한참 웃었다.


둥지를 짓느라 바쁜 까치, 봄이 바야흐로 봄이


202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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