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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25. 2022

꽃씨를 뿌리자


*

점심 약속이 있어서

막 엘리베이터를 타며

스맛폰을 확인했더니

오늘 약속을 다른 날로 옮겨야겠다며

집에 일이 생겼다는 톡이 와 있다.

몇 분 전 아직 집에 있을 때 온 메시지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읽다가 약속이 취소된 걸 알게 된 거다.

1층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올라올 때는 걸어서 왔다.

7층이니까, 시간이 갑자기 많이 생겼으니까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별일 없길 바란다는 문자를 보냈다.

약속이라는 것도 가능성의 확률이 높은 것일 뿐

언제든 어긋날 수 있고

지켜지지 못할 수도 있다.


몇 번 약속을 어긴 상대로 인해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가는 길에 혹시 몰라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문자를 보내자

깜빡하고 딴 일정을 잡았다는 경우,

이미 나는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그땐 솔직히 화가 많이 났다.

두 어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그게 화가 날 일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전에 그런 사소한 일로 화를 낸 적도 꽤 많긴 했지만

그땐 정말정말 뭘 모르던 때였고!


약속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확고함이 유연하게 바뀐 계기는

강의를 해야하는 날

나는 엉뚱한 곳에 있었던 적이 있다.

적어도 한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강의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토요일 경상북도 어느 도서관에서 강의가 있었는데

평소 기차를 주로 타고 다니다

그곳엔 버스말고는 달리 교통편이 없어서 버스를 탔다.

당연히 주말에 밀린다는 걸 그땐 정말 깜빡했었다.

기차는 거의 제 시간에 도착을 했기에...

강의시간을 무려 1시간 하고 30분이나 뒤로 미루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도서관 관장님이 버스터미널에 마치 007작전하듯 대기하고 있다가

날 픽업했고

그렇게 강의를 하러 들어갔더니

수강하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럼에도 기다려주셨다..


이런 대형 사고를 두 어 개 치고나서야

역지사지의 마음이 되더라는


세상일이라는 게 어떤 일이든 벌어질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런 유연함은 삶에 필수품이라는 걸

좀 더 이른 나이에 알아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나마나한 소리^^


갑자기 생긴 시간은 자전거를 타며 천변을 신나게 한 시간여 달리는 걸로 채웠다!


**

벌이 지난 겨울을 지나며 많게는 100억 마리 가량 사라졌다 한다.

벌집붕괴증후군 Colony Collapse Disorder 일명 CCD

이미 2006년에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는 현상

대체 왜 벌이 집단으로 사라졌는지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살충제도 원인일 수 있고

이상 기후도 원인일 수 있고

전자파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무튼 벌들도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라면

이제 벌이 꽃가루받이해주는 채소와 과일이 우리 식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해서 봄에는 꽃씨를 좀 심어볼까 한다.

베란다에 빈화분이 몇 개 있는데

그곳에 이런 저런 꽃씨를 심어서

바람이 자유롭게 오가는 베란다 밖 화분 거치대에다 두려한다.

벌들이 드나들며 꽃가루를 맘껏 가져갈 수 있도록


20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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