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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Nov 03. 2019

그 따스함의 기억을 오래오래...

생태와 그림책 읽기 2: 나의 새 둥지 그림일기





최원형

볕이 유난히 따뜻한 날, 창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 잠깐 졸았나보다. 졸음이 잠으로 넘어가려는 그 찰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근처에 사는 친구가 우리 집 앞을 지난다며 나오라는 전화다. “나, 지금 너무 졸려서 잠깐 잘까 싶은데.” “얘는, 지금 날씨가 얼마나 화창한데 칙칙한 방안에서 잠이야, 잠은. 얼른 나와.”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뚝 끊어버린다. 졸음은 이미 정적을 깬 소음 덕에 다 달아나기도 했지만, 퍼뜩 드는 생각이 칙칙한 방안과 화창한 바깥의 대비였다. 그래 좋아, ‘화창함’을 영접하러 나가야지. 경칩도 지나고 춘분이 코앞이라지만 아직은 이른 봄이라 쌀쌀한 기운이 스며들까 싶어 두꺼운 점퍼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나갔더니만 아, 진짜 말 그대로 뽀얀 봄날이다.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온 양지꽃
“어디로 가려고?”
“그냥 동네 한 바퀴하려고. 이런 날 방에 콕 박혀있는 건, 봄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겠니?”
그리하여 둘은 뚤레뚤레 마실을 나섰다. 우리 동네는 산자락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 빈둥거리며 걷다보면 늘 산언저리 어디쯤이다. 아직 삼월인데 이르게도 노란 양지꽃이 더러 눈에 띈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막 산길로 접어드는데 어디선가 ‘붕붕’ 댄다. 세상에나 날개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붕붕거리며 정지비행을 하고 있는 녀석은 바로 ‘빌로도제니등에’다. 제자리에서 어찌나 빨리 날개 짓을 하는지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까맣고 긴 빨대 입으로 양지꽃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쿡쿡 찌르고 있다. 아마도 꿀을 빨아먹는 모양인데,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저렇게 하고도 뭘 먹을 수 있을까 싶다. 재미난 구경을 만난 우리 둘은 쪼그리고 앉아 막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는 걸 알아차린 걸까? 붕붕대던 녀석이 순식간에 딴 곳으로 휙 날아가 버린다. 덜컥 허탈해진 우리 둘은, 그렇지만 그 붕붕대던 여운을 금방 거둘 수가 없어 그 자리를 잠시 지키고 있었다. 
그때, 좀 전까지 그저 배경이었던 양지꽃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꽃받침부터 줄기까지 빽빽이 박혀있는 좀 무시무시해 보이는 털도 보이고, 암술과 그걸 둘러싸고 있는 수술, 그리고 여섯 장의 샛노란 꽃잎까지. 그냥 양지꽃이야 하고 내려다보며 지나칠 적엔 몰랐던 아름다움의 발견이다. 흔한 일상에서 어떤 작은 깨달음을 얻었을 때 기분이 이러할까? 앉아서 찬찬히 들여다본 양지꽃은 마치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는 듯했다. 친구도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천천히 살피는 눈치다.
갑작스레 머리 위로 시끌벅적 파도가 인다. 느닷없이 나타난 십여 마리의 어치 떼가 저희들끼리 막 짖어대는데, 그 소리가 어치의 예쁜 깃 색깔과는 대조적으로 깍깍 거린다. 우리 둘은 눈을 들어 그들의 몸짓언어를 읽어보려 애쓴다. ‘그러니까 얘네들이랑 쟤네들이랑 싸우는 건가? 아, 아닌데, 저 녀석이 뭔가 질서를 어지럽힌 건 아닐까?’ 이렇게 나름 유추를 해보지만, 우린 둘 다 솔로몬의 반지가 없었던 거다. 끼고 있기만 해도 짐승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그 솔로몬의 반지가 말이다. 머리 위로 파란을 일으킨 어치 떼의 소란함에 밀려나듯 그곳을 벗어났다. 적막하고 쓸쓸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지독한 소음 한가운데 있어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아무리 지독한 소음도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도. 우린 어쩜 오늘 득도할지도 모르겠다며 낄낄거렸다.

모든 생명은 더불어 살아간다
근데, 또 새다. 이번엔 박새다. 박새가 앉아있는 단풍나무 줄기 군데군데가 얼룩져있다. 그리로 이따금 여러 새들이 날아와 잠시 머물다 가곤 한다. 대체 뭘까? 가까이 가보니, 나무껍질이 좀 벗겨져있고 그리로 물이 흐른다. 새가 부리로 긁은 것이 틀림없다. 흘러내린 물을 찍어 맛을 보니 아, 달작 지근한 단풍수액! 수액으로 목을 축이고 있었구나. 봄이 되면 새들도 나무에 물이 오른다는 걸 알았던 거다. 한 겨울에 눈을 먹던 까마귀가 생각난다. 물이 귀한 겨울엔 물대신 눈을 먹기도 한다. 새들도 목을 축이며 사는 생물이다. 그리고 생물은 누구든 먹어야 산다. 벌레들마저 나무속으로 땅 속으로 깊이 숨어든 겨울에 몇 안 되는 말라비틀어진 열매마저 귀한 그 시간 동안, 새들은 어찌 그 곤곤한 시간을 견뎠을까? 

‘나는 산속에 살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스즈키 마모루의 그림책이 문득, 떠오른다. 

 

“ 겨울에 나는 새들에게 먹이를 줍니다. 박새와 곤줄박이는 해바라기 씨를, 

동박새와 제주직박구리는 귤이나 사과를 먹으러 옵니다.”(PP.3-4)


  

<나의 새 둥지 그림일기/스즈키 마모루 지음/ 박숙경 옮김/ 소년한길>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는 헌식의 전통이 있었다. 동물들의 드나듦이 많은 곳에 먹을 것을 두고 날짐승이든 들짐승이든 함께 나누었다. 까치밥이 또한 그러했다. 늦가을 감 몇 개는 따지 않고 남겨두어 겨울양식이 부족한 까치뿐 아니라 여러 새들을 배려했다. 농부가 콩 심을 때 세 알을 심는 까닭도 이것과 맞닿아있다. 한 알은 땅 속 벌레, 한 알은 새, 그리고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이. 이것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단순명료한 진리를 실천하는 행위다.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는 바로 ‘생명’이므로. 

모든 태어난 생명들이 만날 세상, 언제나 따스하길
이 그림책의 화면구성은 눈 쌓인 첫 장면과 눈 내리는 끝 장면을 빼고 똑같다. 똑같은데 다르다. 집과 텃밭, 뒷산, 나무 몇 그루 그리고 휘돌아 흐르는 시개천은 언제나 그 자리에 붙박이인 듯 있지만 실은 계절의 쉼 없는 변화를 끊임없이 담아내고 있다. 
그 변화는 색깔, 향기, 소리의 상상을 이끈다. 그리고 그 중 으뜸은 소리의 상상이다, 새들의 소리. 


책장을 넘기면서 왼쪽만 보면 계절의 변화에 따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초롱꽃이 피면 개똥벌레가 하나 둘씩 나옵니다.”(P.24)

“장마철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비만 주룩주룩 내립니다. 하지만 먹이를 먹지 못하면 새끼들이 죽기 때문에 엄마 새, 아빠 새는 비가 내리는 날에도 쉬지 않고 먹이를 구하러 나갑니다.” (P.26)

책장을 넘기면서 오른쪽만 읽으면 다양한 새둥지의 재료, 만드는 방법, 모양과 함께 새들의 생태를 알 수 있는 정보들이 가득 담겨 있다. 

“오목눈이가 둥지 바깥쪽에 붙일 매화나무 이끼를 뜯고 있습니다.”
“춥지 않도록 둥지 안에 깃털을 많이 넣어 두면 오목눈이의 둥지가 완성됩니다.”(P.13)

“알에서 깨어난 지 11일. 제주직박구리 새끼도 둥지에서 나왔습니다. 벌레부터 나무 열매까지 이것저것 모두 먹습니다.”(P.31)

왼쪽과 오른쪽을 합치면 구체적인 정보들이 이야기를 짱짱하게 뒷받침해주는 ‘새둥지관찰기’가 된다. 새가 둥지 만드는 걸 알아내기 위해선 지극한 관찰이 필요하다. 새란 누군가 지켜본다 싶으면 어김없이 동작을 멈추거나 멀리 날아가 버리기 일쑤니까. 이 책의 작가 스즈키 마모루는 새 둥지 연구가다. 그가 쓴 새둥지 책 몇 권을 읽고 새의 생태에 관심이 생겼다. 둥지를 만드는 게 바로 먹고 사는 문제와 자손번식, 이 두 가지를 해결하는 일이었고, 그건 새들의 삶 전부였다. 둥지, 그곳은 생명이 태어나 눈도 뜨기 전에 처음 만나는 안식처다. 둥지, 그것은 이름만으로도 안온함이 느껴진다. 따스함이 전해져 온다. 그 따스함에서 태어난 생명이 만날 세상도 언제나 따스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와 산길을 돌아 내려오다 나무 위에서 부리로 가지를 자르는 까치를 보았다. 잠시 뒤, 나뭇가지를 문 까치가 휙~ 날아간다. 나무 몇 개를 지나 다다른 나무 위에 막 짓기 시작한 까치둥지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나무순은 벌써 부풀고 있다. 저 멀리 겨울 끝자락이 희미하다. 곧 나뭇가지에 작은 잎사귀가 무수히 돋아날 따스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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