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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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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Mar 31. 2022

보리수


바쁜 하루였다.


2010년쯤이었을까?

인도에 살고 있던 지인이 보리수 화분을 하나 가져왔다.

굵기는 젓가락 정도?

내가 그 화분을 받았을 땐 잎이 그저 하나 정도 붙어있었을까?

인도에서 한국으로 비행기 타고 오느라

지친 모습이었다.

집으로 데려왔을 땐

그 하나 붙은 잎마저 떨어져 그냥 젓가락 하나 꽂아진 형국이었다.

갈등이 일었다.

그냥 버릴까? 그러다

인도에서 온 보리수나무라는 게 너무 아쉬워

물을 주며 들여다봤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

잎이 돋는 거라.

그때 그 기분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기적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보리수는 지금 내 키보다 훌쩍 크고

굵기는  굵은 밑둥이 지름 7~8cm은 족히 될 정도로 자랐다.

여름엔 잘 자라 가지를 일년에 적어도 한 차례 쳐줘야할 정도다.

그렇게 잘라낸 가지의 잎이 아까워 책갈피에 말리고

가지는 점점 굵어지니 버리기 아까워

베란다 한 구석에 두었다.

재작년이었던가 고추모종을 마침 생협에서 나눠줘 세 그루인가 심었는데

잘  자라면서 지지대가 필요해 마침 보리수 가지가 눈에 띄어 가져다 바쳐줬다.

여름이 끝나고 고추가 잘 열리고 늦여름쯤이었을까?

보리수에 잎이 잔뜩 열린 걸 발견했다.

그 전까진 고추에만 관심이 있어서 지지대에 잎이 나는지 어쨌는지도 몰랐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원효대사인가 사명대사인가?ㅎㅎㅎ

그걸 어느 스님께 드린다고 뽑아서(이때 아마도 뿌리가 많이 뜯겨나갔을 거다.ㅜㅜ)

급히 화분에 옮겨심고 가져다 드렸는데

살질 못했다.

미얀마에서 공부하고 오신 스님은 인도 부처님 나라에서 온 보리수여서

반가워하셨다가 못내 아쉬워하셨던 걸 알고

작년에 다시 가지치기 하면서 두 가지를 잘라 화분에 꽂아뒀다.

과연 잎이 날지 말지..

그런데 두  화분 모두 잎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쏟은 정성이라고는 제때 물을 준 것말고는 없는데..


제법 자라서 오늘 그 스님을 다시 만나 전해드렸다.

문제는  가지고 가는 일이었는데

여린 잎이 달려있는  가지가 행여 다칠까

얼마나 고심을 하며 마침BR케잌을 사면서 받았던 비닐백 두 개가 있어

거기에 담아서 전달했다.


이제 새 주인 만나 사랑 듬뿍받으며 화분이 잘 자랄 거라 믿는다.

아침에 들고 나가는데 뭐랄까?

마음이 좀 뭉클했다.


인도 어느 보리수나무에서 시작된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륙을 건너온 보리수는 또다시 새로운 인연과 만나고

또 만나고...

태초에 씨앗 한 알이 있었을까?


저녁엔 강원도교육연수원 공개강의를 줌으로 했다.

7시부터 9시까지

강의를 마치고 나니 배가 고프다

그림도 날마다 그리겠다고 했으니 그려야했다.

보리수 잎을 그리고 싶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해서

단풍나무 씨앗을 하나 그려봤다.

그것도 연필로 대애충..

점점 성의가 부족한 듯

그럼에도 뭐라도 쉬지 않고 그리는 게 중요하니..


어제에 이어 오늘도 졸립다.

종일 바쁜 하루였다.

하루에 두 그룹의 사람을 만났고

점심 약속도 있었고

저녁 강의까지

그 사이에 집안 일까지.


오늘 충분히 잘 살았다.


2022.3.31 쓰고보니 벌써 올해도 1/4이 지나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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