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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Apr 03. 2022

꽃보다 아름다운 채소 한 다발


이 밥은

숨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과 물이 나의 옛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몸 온마음으로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수경스님의 공양송이다.


부엌에 붙여두었지만

어느 순간 이게 붙어있다는 그조차 느끼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기후로 농작물 생산이 전같지 않다는 걸 올 겨울 유난히 느꼈다.

생협에 품절인 나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장을 보고 손질을 해서 반찬을 만들어 밥을 먹을 때

내 마음에 감사함이 몽글몽글 인다.

유채가 요새 아주 맛있다.


워낙 요리에 취미가 없는지라 그냥 되는데로

된장 또는 막장에 고추장과 마늘 들기름 그리고 조청을 섞어서 쌈장을 만드는데

언니가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먹어보고는

맛있다고 한다.

이 쌈장에 유채를 날것 그대로 찍어먹으면

딴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다.

유채꽃도 이쁘지만

유채잎도 줄기도 정말 맛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 순간이 감사했다.

그러다 공양송이 떠올랐다.

이미 밥을 한참 먹던 중인데

공양송을 읉었다.


날마다 밥을 먹기 전에 한번은 읽어야지 했지만

또 까먹는다.

까먹으면 다음엔 안 까먹도록 하면 될 일이다.

습관이 몸에 붙을 때까지.


오늘 비아캄페시 한국 대표이신 김정열 선생님께서

밭에서 뜯은 시금치를 쥐고 있는 사진을 페북에 올리셨다.

보는 순간 꽃다발보다 아름답구나, 느꼈다.


농삿일을 해 본 적 없이

그저 먹을줄만 아는 나로서는

농부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이다..

가끔 집안 일을 하다 쪼그리고 앉으면 허리가 너무 아프다.

평생을 농삿일을 하신 분들은 오죽할까, 이 생각이 드니

아프다는 소릴 감히 꺼낼 수가 없다.


철기시대 이래로 호미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던 구점숙 농부님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특히나 여성농민들의 현실


4월,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다.

밭을 갈무리하고 씨를 리는 계절

올해는 공양송을 끼니 때마다 읊을 수 있는 미션을 수행하기로

내 목숨 부지시켜주시는 자연과 농민들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한 해 살아보기로.


2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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