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하루를 잘 보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한참 연체한 채로
오늘 반납을 했다.
걸어서 고작 몇 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인데
까먹기도 미루기도 하다가
그만 연체가 한참 된 채로
오늘은 작정하고 반납하려
현관 발판 위에다
세탁 맡길 겨울 외투를 넣은 가방 위에 책을 두 권 올려놓고는
점심을 먹은 뒤에 들고 나섰다
생각보다 햇살이 뜨겁다
두꺼운 겉옷을 벗어 허리춤에 묶고
도서관에 들러 반납하고
마트 안에 있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마트에 들어가 새 모이를 샀다
우리집의 원주인이라고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공간에 우리가 들어온 거니까
그래서 그들을 위한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준비해둔다
오늘은 달달한 과자도 몇 개 샀다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아동노동의 현장을 알고 난 이후 가능하면 공정무역 초콜릿을 먹으려하지만
동네에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러가려면 좀 걸어야해서
오늘은 내 안에서 단 게 먹고 싶대잖아, 이럼서 샀다
오랜만에 먹는 과자는 내 예상과 달리 그리 맛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아침을 뺀 세 끼니를 머우쌈과 두룹과 미역 튀김으로 뚝딱 먹었다
밥심으로 사는 거 맞다...라고 쓰다보니
공양송을 또 깜빡 했네, 이런
얼른 외워본다
이 밤은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흙으로 잘못 암송)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 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안 까먹고 잘 하나 싶었더니만...
머위에 마음이 팔렸던 건지 두룹에 마음을 빼앗긴 건지
군침흘리느라 공양송까지 다 삼켜버렸던 겐지...
집 앞 숲이 성큼 커지고 푸르러지고 있다
창을 여니 여린 잎들이 자라면서
퍼트리는 향기 그러니까 풀냄새가 너무나 향긋하고 싱그럽다
그냥 모든 것이 다 감사하구나.. 싶다
담주 강의할 것 하나 프리젠테이션 갈무리하고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런 날이 행복하다
늘 이러고 살면 또 지겨워 주리를 틀겠지만!
오늘도 식물을 그렸다
식물을 그릴 때 편안하고 좋다
어설퍼도 그냥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7시가 넘도록 모이대에 참새 서너 마리가 머물다 갔다
아마도 참새네 둥지가 우리 집 아주 가까이 있는 듯
야근을 하는 건지 토요일인데도 아주 늦게까지 있다 가네...^^
2022.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