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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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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형 Apr 23. 2022

숲 향, 향긋하고 싱그럽고


토요일 하루를 잘 보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한참 연체한 채로

오늘 반납을 했다.

걸어서 고작 몇 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인데

까먹기도 미루기도 하다가

그만 연체가 한참 된 채로

오늘은 작정하고 반납하려

현관 발판 위에다 

세탁 맡길  겨울 외투를 넣은 가방 위에 책을 두 권 올려놓고는

점심을 먹은 뒤에 들고 나섰다


생각보다 햇살이 뜨겁다

두꺼운 겉옷을 벗어 허리춤에 묶고

도서관에 들러 반납하고

마트 안에 있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마트에 들어가 새 모이를 샀다


우리집의 원주인이라고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공간에 우리가 들어온 거니까

그래서 그들을 위한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준비해둔다

오늘은 달달한 과자도 몇 개 샀다

초콜릿을 좋아하지만

아동노동의 현장을 알고 난 이후 가능하면 공정무역 초콜릿을 먹으려하지만

동네에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러가려면 좀 걸어야해서

오늘은 내 안에서 단 게 먹고 싶대잖아, 이럼서 샀다

오랜만에 먹는 과자는 내 예상과 달리 그리 맛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아침을 뺀 세 끼니를 머우쌈과 두룹과 미역 튀김으로 뚝딱 먹었다

밥심으로 사는 거 맞다...라고 쓰다보니

공양송을 또 깜빡 했네, 이런

얼른 외워본다


이 밤은

숨 쉬는 대지와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명의 선물입니다


이 밥으로

땅(흙으로 잘못 암송)과 물이 나의 옛 몸이요

불과 바람이 내 본체임을 알겠습니다


이 밥으로 

우주와 한 몸이 됩니다

그리하여 공양입니다


온 몸 온 마음으로

온 생명을 섬기겠습니다


안 까먹고 잘 하나 싶었더니만...

머위에 마음이 팔렸던 건지 두룹에 마음을 빼앗긴 건지

군침흘리느라 공양송까지 다 삼켜버렸던 겐지...


집 앞 숲이 성큼 커지고 푸르러지고 있다

창을 여니 여린 잎들이 자라면서

퍼트리는 향기 그러니까 풀냄새가 너무나 향긋하고 싱그럽다

그냥 모든 것이 다 감사하구나.. 싶다


담주 강의할 것 하나 프리젠테이션 갈무리하고는

빨래하고 청소하고

이런 날이 행복하다

늘 이러고 살면 또 지겨워 주리를 틀겠지만!


오늘도 식물을 그렸다

식물을 그릴 때 편안하고 좋다

어설퍼도 그냥 멋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7시가 넘도록 모이대에 참새 서너 마리가 머물다 갔다

아마도 참새네 둥지가 우리 집 아주 가까이 있는 듯

야근을 하는 건지 토요일인데도 아주 늦게까지 있다 가네...^^


202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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